영국 연방국가인 뉴질랜드 정부도 “유엔결의에 따라 함정을 파견하겠다”며 참전 의사를 표명했다. 이후 프리깃함 2척이 1950년 7월 3일 자국을 떠나 30일 한국 해역에 도착해 본격적으로 해상작전을 지원했다. 뉴질랜드 해군은 휴전이 조인될 때까지 8척의 함정을 교대로 투입하면서 작전을 펼쳤다.
또한 독특하게 보병부대가 아닌 포병부대를 파견해 화력으로 유엔작전에 기여했다. 제16야전포병연대의 일부로 구성된 뉴질랜드 포병대대는 처음에는 영국 제27여단에 소속돼 전투를 수행했으나, 전투경험이 부족했던 뉴질랜드 포병은 인접국인 호주의 부대와 나란히 영연방 군에 속해 그들로부터 많은 기술적 지원을 받기도 했다.
뉴질랜드 포병대대는 중공군의 신정공세 이후에는 영국의 미들색스연대 보병대대, 캐나다 보병대대에 대한 화력지원을 효과적으로 수행해 가평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뉴질랜드는 포병뿐만 아니라 소규모이긴 하지만 해군병력을 보내 유엔작전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