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호주) 정부의 군사원조 조치는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승인됐다. 호주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1만 5천 명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이 가운데서 1개 대대 병력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호주는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역에서 미군과 함께 연합작전을 수행한 바 있으며, 유럽에서도 많은 전투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유엔 한국위원단 회원국인 호주는 남북한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유엔이 파견한 군사조사단에 1950년 초 유일하게 2명의 장교를 파견했기 때문에 남한의 방어태세와 북한의 침공위협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호주 제3대대는 1950년 9월 27일 한국에 도착해 유엔군의 북진단계부터 곧바로 작전에 참가했다. 사리원 전투에서 적극적인 백병전을 벌여 후퇴 중인 북한군을 격멸함으로써 작전속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이들은 영유리 전투, 박천 전투, 가평 전투, 마량산 전투 등에서 뛰어난 전투능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