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국, 터키, 캐나다 4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참전국은 대대급 규모의 병력을 파견했다. 아시아에서는 태국이 가장 먼저 유엔의 한국지원에 호응해 지원의사를 표명했다. 태국은 전쟁 발발 5일 후인 6월 30일 국가의 주 생산물인 쌀 4만 톤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지지를 보냈다. 유엔 회원국 중 최초로 물자지원 의사를 밝힌 태국에 대해 리 유엔 사무총장은 "태국 정부가 유엔결의를 지지하고, 식량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사실에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중립을 표방해 왔던 태국의 참전은 단지 '서구의 제국주의자들'만이 한국에 병력을 파견할 것이라는 소련의 선전을 일축하는 데 좋은 모범이 됐다.
태국군은 참전 준비가 늦어지면서 결국에는 1천 명에 달하는 1개 대대의 육군병력을 파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태국은 육군부대 이외에 프리깃함 2척과 왕립 태국공군의 C-47 수송기를 보내 미 공군 제21병력수송대대에 속해 활동케 하는 등 육·해·공군을 모두 파견한 국가이다. 태국 대대의 용감성은 포크찹(Porkchop)고지 방어에서 확실히 드러났다. 태국군은 세 번에 걸친 중공군의 공격을 백병전과 역습으로 물리치며 끝까지 고지를 지켜냈다. 이 과정에서 태국군은 '작은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