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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중소기업

정부의 중화학공업조정의 자금동원 계획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1979년 경제기획원 「중화학공업추진의 당면과제와 대책」

1979년 경제장관협의회 결정(11. 28)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공자원분과위원회 결정(8. 19)

배경
중화학공업조정은 1979년 4월 12일 열린 「경제장관협의회」에서 경제기획원장관 주도로 ‘중화학공업 투자조정 및 수출지원 폭 축소’를 골자로 하는 중화학공업 투자조정안이 통과되면서 분명해졌다. 1979년 5월 25일에는 중화학공업투자조정 발표가 있었고 하반기에도 경제기획원을 중심으로 중화학공업조정 논의는 계속되었다. 박정희대통령 사후 중화학공업화에 대한 비판은 과잉투자론으로 연결되어 중화학공업의 본격적인 조정으로 이어졌다.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중화학공업조정은 7월 「발전설비 및 자동차분야 문제 해결방안」 제시에 이어 8월 20일 「중화학투자조정조치」가 발표됨으로써 시작되어 이후 계속되었다. 정부는 중화학공업조정에 착수하면서 조정을 위한 자금동원계획을 세웠다.
경과
1979년 5월 25일 중화학공업투자조정은 ‘대단위 종합기계공장의 육성을 위해 지원체제 면에서 근본적인 개편조치를 별도로 강구한다’는 내용과 함께 발표되었다. 실질적으로 7월 830억 원을 시작으로 8월, 9월, 10월에 계속 정부 특별자금 지원조치가 이루어 졌다. 


따라서 중화학공업 기업에 주어진 총 특별구조자금은 차관원리금 도래 지원과 수출지원금융 등을 제외하고도 5,053억 원으로 중화학공업 조정에서 삭감된 금액 1,326억 원, 조정예정금액 3,727억 원을 훨씬 초과했다. 1979년 8월 경제기획원은 중화학공업 조정에 대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의지를 정리하면서 우선해야 할 시책으로, 중화학공업에 대한 산업조정보다 기업단위의 경영합리화 계획을 들었다. 10. 26 후 「현대양행」, 「대우」, 「현대중공업」 등은 정부요구에 의해 투자와 투자조정이 이루어졌음을 강조하며 정부책임으로서의 정부지원을 요구했다. 정부로서는 10.26 이후 경제안정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기에 「경제장관협의회」는 11월 28일 기업요구를 대폭 수용할 것을 결정하였다. 1980년 이후 조정에서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지원을 필연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있었고, 이런 가운데 조정관련 대기업들은 자신의 이익에 맞는 정산금액을 주장해 각 기업 정산금액에는 2-10배의 큰 차이가 나타났고 동시에 모두 막대한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
내용

정부의 중화학공업조정과정의 자금동원 계획 내용과 한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선 경제기획원은 중화학공업기업체들의 빈약한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자금조달방법으로 연관업체의 방계기업 처분과 비업무용부동산 매각을 추진하였다. 중화학공업체들의 1978년 12월 말 자기자본 비율을 보면 「현대양행」은 8.4%, 「삼성중공업」은 15.7%, 「대우중공업」은 22.8%, 「현대중공업」은 65.4%로 재무구조가 취약했었다. 그러나 국민저축의 부족과 국내 자금난으로 기업들의 증자는 사실상 어려웠으며 기업의 방계회사 처분과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은 일부 실행되었으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둘째, 경제기획원은 중화학공업투자조정의 자금지원 및 사후관리의 효율화를 위한 목적으로 국민투자기금, 회사채 발행, 해외차입에 의한 5천억 원 상당의 자금을 조성하여 「중화학공업투자공사」의 설립을 검토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백지화되었으며 조정과정에서 「대우」 그룹의 「한국중공업」에 대한 투자재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한국중공업」을 공사화 하는데 그쳤다.


셋째, 국보위 상공자원관리위원회는 중화학공업투자조정과 관련된 외국의 투자처와 기술제휴업체에 대해서는 그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계속적인 투자유치를 확보하여 조정작업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국내기업과 외국투자처와의 이해관계 상충으로 난관에 부딪쳤고 결국 해외로부터의 투자재원조달에 어려움을 가져왔다.


넷째, 상공부는 중화학진흥기금으로 재정자금에서 1,170억 원을 확보하여 기계, 전자, 자동차 등 주요전략의 생산성향상과 기술개발을 지원하기로 하였으나, 가동률이 떨어진 중화학업체들의 자금난을 해소하여 투자조정정책의 성과를 올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중화학공업조정에서 많은 자금동원 계획이 검토되었으나 예상대로 조달되지 못했다. 동시에 실제 조정에 소요된 금액은 정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참고자료

경제기획원,《중화학공업추진의 당면과제와 대책》, 1979. 8.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공자원분과위원회,《발전설비 및 자동차분야 통합을 위한 투자조정》, 1980. 8. 19.

국가보위입법회의,《국가보위 입법회의, 경제 제1위원회 회의록》제5호, 국가보위입법회의 사무처, 1980. 11. 5.

김의균, <중화학공업투자조정의 내막>《신동아》, 1980. 12, pp. 252-263.

《매일경제신문》, 1979. 11. 29-1980. 8. 30.

박영구, <정책시그널로 본 70년대 중화학공업조정의 미시적 연구> 《무역경영논집》제10집, 부산외국어대학교 무역경영연구소, 1994. 12, pp. 5-28.

박영구, <산업조정의 인식과 경험: 1980년대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국국제경제학회 2000년도 동계학술대회 논문집》, 2000. 12. pp. 333-354.

《서울경제신문》, 1979. 9. 1

손준철 <중화학공업투자조정의 경과와 실패원인>《입법조사월보》145, 대한민국국회, 1985. 4, pp. 45-46.

Jong-Chan Rhee, The State and Industry in South Korea: The Limits of the Authoritarian State,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1994

집필자
박영구(부산외국어대학교 상경대학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