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경제기획원 「중화학공업추진의 당면과제와 대책」
1979년 경제장관협의회 결정(11. 28)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공자원분과위원회 결정(8. 19)
정부의 중화학공업조정과정의 자금동원 계획 내용과 한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선 경제기획원은 중화학공업기업체들의 빈약한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자금조달방법으로 연관업체의 방계기업 처분과 비업무용부동산 매각을 추진하였다. 중화학공업체들의 1978년 12월 말 자기자본 비율을 보면 「현대양행」은 8.4%, 「삼성중공업」은 15.7%, 「대우중공업」은 22.8%, 「현대중공업」은 65.4%로 재무구조가 취약했었다. 그러나 국민저축의 부족과 국내 자금난으로 기업들의 증자는 사실상 어려웠으며 기업의 방계회사 처분과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은 일부 실행되었으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둘째, 경제기획원은 중화학공업투자조정의 자금지원 및 사후관리의 효율화를 위한 목적으로 국민투자기금, 회사채 발행, 해외차입에 의한 5천억 원 상당의 자금을 조성하여 「중화학공업투자공사」의 설립을 검토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백지화되었으며 조정과정에서 「대우」 그룹의 「한국중공업」에 대한 투자재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한국중공업」을 공사화 하는데 그쳤다.
셋째, 국보위 상공자원관리위원회는 중화학공업투자조정과 관련된 외국의 투자처와 기술제휴업체에 대해서는 그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계속적인 투자유치를 확보하여 조정작업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국내기업과 외국투자처와의 이해관계 상충으로 난관에 부딪쳤고 결국 해외로부터의 투자재원조달에 어려움을 가져왔다.
넷째, 상공부는 중화학진흥기금으로 재정자금에서 1,170억 원을 확보하여 기계, 전자, 자동차 등 주요전략의 생산성향상과 기술개발을 지원하기로 하였으나, 가동률이 떨어진 중화학업체들의 자금난을 해소하여 투자조정정책의 성과를 올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중화학공업조정에서 많은 자금동원 계획이 검토되었으나 예상대로 조달되지 못했다. 동시에 실제 조정에 소요된 금액은 정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경제기획원,《중화학공업추진의 당면과제와 대책》, 1979. 8.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공자원분과위원회,《발전설비 및 자동차분야 통합을 위한 투자조정》, 1980.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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