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자공업의 대량 수요를 창출하기 시작한 「통신사업 5개년 계획」이 1962년 정부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런 속에서 1965년 초 이만희(李晩熙) 전기공업과장은 선구적으로 한국의 현실에 맞는 전자공업육성론을 들고 나와 국장인 오원철(吳源哲)씨와 논의 후 1971년 수출목표 1억 달러의 「전자공업진흥5개년계획안」을 최초로 마련하고 상공부장관의 결재까지 얻었다. 그러나 이는 본격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최초의 안으로만 남게 되었다.
1966년 미국에서 전자요업연구소의 책임연구원이었던 김기형박사가 귀국하여 박정희대통령에게 ‘전자와 세라믹 공업은 노동집약적인 공업이므로 유휴노동력이 많은 한국에 매우 유리하다’고 건의함으로써 대통령은 상공부에 전자공업육성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이에 따라 상공부는 1966년 전자공업육성기반구축작업에 착수했는데 그 내용은 다섯까지였다. 첫째, 손쉽게 개발할 수 있는 품목발굴과 국제경쟁력 있는 품목을 조사한다. 둘째, 통신공업 일부를 떼어내 전자공업의 영역을 확대한다. 셋째, 외국산에 대해 강력한 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여 가능한 품목의 국산화를 유도한다. 넷째, 업계발전을 위해 전자공업협동조합의 창립을 추진한다. 다섯째, 정부차원의 전자공업진흥5개년계획을 수립한다.
이 기반구축계획에 따라 상공부의 전자공업진흥계획이 작성되었고 상공부의 박충훈 장관은 그 결과를 1966년 12월 15일 「전자공업진흥 5개년계획」으로 발표하였다. 이와 함께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에서 공업화의 3대 성장산업으로 합성섬유, 석유화학, 전기전자를 지목하게 되었다.
「전자공업진흥 5개년계획」은 추진 주요내용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들었다.
가. 전자부품의 국산대체
나. 조립 및 부품 공장의 분업화와 전문화 추진
다. 수출원가의 절감
라. 전자공업 전문기술인력의 양성
마. 전자제품 수출시장의 다변화 추구
동시에 「전자공업진흥 5개년계획」은 1967년부터 5년 동안 전자공업부문 수출 1억 달러를 제시하여 전자산업을 수출전략산업으로 지정하였다. 「전자공업진흥 5개년계획」이 만들어지자 대통령은 1967년 1월 17일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 「전자공업진흥 5개년계획」을 발표하고 이를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연두교서에서 “전자공업 발전과 국산화 개발에도 힘쓸 것”이라고 언급했다. 「전자공업진흥 5개년계획」이 만들어지면서 상공부가 이 계획과 함께 1966년 전자공업육성기반구축작업 5가지에서 창설을 계획한 「한국전자공업협동조합」이 1967년 1월 12일에 창립되었고 전자공업진흥에 세제, 금융상의 지원이 이루어져 전자공업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
서현진,《끝없는 혁명-한국 전자산업 40년의 발자취》이비컴, 2001.
이만희,《EPB는 기적을 낳았는가-한국산업정책의 이상과 현실》해돋이, 1993.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한국공업화발전에 관한 조사연구(Ⅲ): 정책결정과정의 이면사》,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