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975년 12월 31일 「중소기업계열화 촉진법」에서 산업자본의 지원과 함께 모기업과 도급기업과의 관계에서 도급업체에 유리하도록 장기 위탁계약을 체결토록 함으로써 중소기업 시설의 대형화, 현대화를 유도했다. 이 법을 통해 정부는 (1) 중소도급기업의 규모 적정화, 시설개선, 기술개발, 원자재 구입을 위한 장기저리 자금을 지원하고, (2) 모기업 횡포를 막기 위해 어음은 영수한 날로부터 60일 이내로 한정하여 발행하도록 하며, (3) 장기위탁계약 체결 등으로 중소계열화 기업의 안정적 성장을 도모하였다. 이후 실질적으로 이 법에 의해 「상공부」는 매년 계열화 대상품목을 확대해 나가는 노력을 했고 계열하청기업과 모기업의 등록이 의무화되었으며 금융상의 지원도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법의 입법취지와 목적과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상공부는 매년 이 제도에 의해 합병, 계열화 기업을 지정, 고시하였지만 그 실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980년 계열화율은 1%에 불과하였고 대상품목은 71개 업체, 업체수는 모기업 64개, 수급기업 263개의 실적뿐이었다. 지원된 자금도 1978-79년 기간 중 43.7억 원, 80년 76.2억 원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원인에는 대기업들의 선택이 있었다. 1970년대 후반 나타난 대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은 자체적인 설립과 기술개발, 동종 국내외 대기업과의 경쟁을 통한 것보다는 선발기업 특히 중소기업을 인수하는 창업자이득(founder's profit)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중화학공업에서도 대기업집단들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중화학공업의 주도권을 재계의 영토분할 전쟁으로 인식하였고 이때 대기업집단들이 선택한 일차 전략이 바로 영토분할에 참여하기에 앞서 기존업체를 인수하여 일단 연고권을 확보하는 방식이었다. 1973년 중화학공업화 선언 이후 99대 기업의 인수합병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특히 1976-78년간 99대 기업에서 중화학공업 23건을 포함하여 45건의 인수합병이 이루어졌다. 대기업집단들은 관련 중화학공업에서만 인수합병을 진행한 것이 아니고 경공업, 기타 부문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인수합병을 하는 무조건적인 혼합결합을 진행하였다.
《관보》1975년 12월 31일자, 6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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