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발 5개년계획〉
〈중화학공업 및 방위산업 육성 시책〉
〈신경제5개년계획〉
〈기술진흥 관계법률 및 법정계획〉
〈신산업 육성 시책〉
1960년대는경공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주도형 공업화를 추진하여 비료, 시멘트, 합판, 섬유 등을 육성하는데 필요한 기술도입을추진하였다. 이후1970년대는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 육성시책에 따라 기술수요가 급속히 팽창하여 해외 기술도입과 국내 자체기술 개발을 시작하였다.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는 1980년으로 넘어가면서 기술혁신역량을 확충하여 산업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1990년에는 지식기반 경제가 도래하고 지식기반 신산업 육성을 위한 신기술개발을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기술육성 정책은 이미 1960년대부터 시작하였다. 초기경공업 중심의 수출지향적 공업화를 추진하고 중화학공업 육성기반을 마련하기위한외국기술도입이 시작되었다. 이를 위해1960년 「외자도입촉진법」 제정, 1962년 「장기결제방식에 의한 자본재도입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하여 기술도입의 제도적 틀을 마련하였다.산업에 필요한 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위하여 1961년 「공업표준화법」제정, 1963년부터‘kS 표시제도’ 를 시행하였다. 그리고, 1967년 기술진흥을 전담하는 과학기술처 출범, 1967년 기술개발시책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해 「과학기술진흥법」을 제정하였다. 산업인력을 육성하기 위하여 1963년 「기술사법」을 제정, 1967년 「직업훈련원법」을 제정하였다.이로써 초기 기술육성 지원정책들이 정비되어 갔다.
1973년 박정희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중화학공업화를 선언하고 철강, 비철금속, 자동차, 기계, 조선, 전자 및 화학을 6대 기간산업으로 선정하였다. 이들 6대 기간산업의 기술개발을 지원하기위해 1975년 한국표준연구소, 1976년 한국선박연구소, 한국전기연구소, 한국기계금속시험연구소, 한국화학연구소, 한국핵연료공단, 한국자원개발연구소, 한국전기기기시험연구소를 설립하고, 1977년 한국통신기술연구소, 한국종합에너지연구소 등을 설립하였다. 또 그동안 정부 주도하에 추진되던 기술개발 영역을 민간기업으로 이전하기 위해서 1972년 「기술개발촉진법」을 제정, 1974년한국기술진흥(주) 설립, 1978년부터 1979년까지 해외기술도입자유화 조치가 단행되었다. 이와 별도로 정부시책 추진을 위한 기술인력 양성 등 기술개발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하여 1970년에「한국과학원법」을 제정 , 1973년에 공업진흥청 및 1977년 특허청 발족하고, 1973년에 「기술용역법」, 1976년에 「한국과학재단법」, 「한국기술검정공단법」, 1977년에 「기능대학법」 을 각가 제정하고 한국과학재단 설립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다.
1990년대 WTO체제 출범, 선진국의 기술보호주의, 기술패권주의, 지식기반경제 도래 등은 기술의 중요성을 크게 부각시켰다. 이에따라 정부는 기술드라이브 정책기조를 채택하고 지식기반 신산업을 육성하고자 하였다. 과기처, 통상산업부, 환경부, 건설부 등 6개 부처가 범부처적으로 선도기술개발사업을 추진하였고, 공업기반기술개발사업 이외에 중기거점기술개발사업, 항공우주기술개발사업, 민군겸용기술개발사업, 청정기술개발사업 등을 추가 시행하였다. 1994년 「공업 및 에너지 기술기반조성에 관한 법률」에 의거 기술 인프라 조성 및 확산사업을 통합하였다. 동시에 산업기술기반조성사업을 시행하는 등 국가연구개발사업을 크게 활성화하였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http://www.nstc.go.kr)
지식경제부 (http://www.mke.go.kr)
교육과학기술부 (http://www.mest.go.kr)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http://www.keit.re.kr)
과학기술정책연구원 (http://www.stepi.re.kr)
한국개발연구원 (http://www.kdi.re.kr)
산업연구원 (http://www.kiet.re.kr)
과학기술처,《한국과학기술 30년사》, 1979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한국 과학기술정책 50년의 발자취》, 1997
과학기술정책연구원,《국가 산업기술정책 동향 및 기술개발지원제도의 선진화》,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