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긴급권은 전쟁·내란·경제공황, 대규모의 자연재해 등 평상시의 입헌주의적 통치기구로써는 대처할 수 없는 긴급사태에 있어서 긴급조치를 취할 수 있는 비상의 예외적인 권한을 부여하여 국가의 존립을 보전하기 위하여 「헌법」 상 인정되는 제도이다.
국가긴급권은 긴급사태에 대처하기 위하여 국가의 존립을 보전하는 제도이다. 국가긴급권을 인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평상시의 법치주의기구로서는 국가적 위기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입헌민주국가에 있어서의 다양한 정치조직은 본질에 있어서 정상적인 평화적 상태하에서 기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므로 중대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부적당한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위기에 있어서 민주적 입헌정부는 그 위기를 극복하고 정상상태를 극복하기 위하여 어느 정도이든 간에 필요한 만큼 잠정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와 같은 비상조치를 필요로 하는 사태가 예측되는 이상 「헌법」에 처음부터 비상조치권을 합법적인 제도로서 규정해 두는 것이 비상조치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고, 또 「헌법」의 파괴를 가져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셋째, 실제로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헌법」에 실정화함으로써 긴급시의 합헌적 독재권력의 행사를 인정하는 대신에 그 발동의 조건, 기간, 형식 등을 정하여 무제약적 긴급권의 남용을 다소라도 방지하는 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긴급권의 남용으로 점철된 인류의 헌정사를 볼 때 「헌법」이 침묵을 지킴으로써 정치적 목적을 위한 긴급권의 무제약적 발동을 방관하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그 제도적 한계를 규정하여 남용을 방지하고 통제를 도모한다는 것은 충분한 현실적인 이유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국가긴급권의 통제
국가긴급권의 통제에는 입법적 통제, 정치적 통제 및 사법적 통제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입법적 통제는 긴급권의 목적·조건·내용·절차·효과 등을 헌법이나 법률에 명시함으로써 긴급권의 발동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긴급권을 실정화함에 있어 지나치게 엄격하고 상세한 규정을 둔다면 이를 무시하거나 배제하기 쉽고, 너무 느슨한 규정을 두면 남용의 가능성이 있어 적정한 제도화가 요청된다.
둘째, 정치적 통제방법으로는 의회에 의한 통제와 국민투표를 들 수 있다. 의회에 의한 통제의 범위와 강도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다르나, 의회가 긴급사태선포에 대한 승인·보고청취·해제요구·사후면책 등의 권한을 갖는 수동적 통제와 의회가 긴급사태의 확인·선포·폐지권을 직접 장악하는 능동적 통제가 있다.
셋째, 사법적 통제는 국가긴급권의 행사가 통치행위로서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제외되는가 아니면 사법심사대상이 되는가에 관하여는 논의가 많지만 심사대상이 된다고 보는 경우에도 사후심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와 같이 국가긴급조치를 사법적으로 통제하기는 어렵고, 정치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론적으로 사법적 통제가 행해져야 할 것이다.
2. 우리 나라의 국가긴급권제도
가. 제1공화국
제헌헌법은 제57조에서 긴급명령권·긴급재정처분권을 규정하고 제64조에서 계엄선포권을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계엄 및 긴급명령권과 긴급재정처분권을 규정한 것은 구일본제국헌법을 모방한 것이라고 하겠다.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계엄법」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계엄을 선포할 수 있게 했으며,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 계엄사령관은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여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는 때에는 대통령은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는 경우에 한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진 명령을 발하거나 또는 제정상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이 명령 또는 처분은 지체없이 국회에 보고하여 승인을 얻어야 했으며, 만일 국회의 승인을 얻지 못한 때에는 그 때부터 효력을 상실하고, 대통령은 지체없이 이를 공포하도록 하였다.
제1공화국 하에서는 한국전쟁을 맞아 이 긴급권이 요긴하게 사용되었으나, 휴전 이후에도 계속하여 그 효력을 인정하여 남용되는 폐단이 많았다.
나. 제2공화국
제2공화국헌법은 제헌헌법하의 긴급권남용을 거울삼아 이에 대한 견제장치를 두고 있었다. 제57조에서 제1항·제2항을 개정하여 긴급명령제도를 없애고 긴급재정처분과 긴급재정명령 만을 인정하였다. 또한 제58조를 신설하여 긴급재정처분이나 명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보고하여 그 승인을 얻어야 하며, 민의원이 해산된 때에는 참의원의 승인을 얻도록 하였다. 이 승인을 얻지 못한 때에는 처분이나 명령은 그 때부터 효력을 상실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제64조를 개정하여 계엄에 관하여 상세히 규정하고 있었다. 즉 “대통령은 국무회의 의결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한다. 계엄의 선포가 부당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대통령은 국무회의의 의결에도 불구하고 그 선포를 거부할 수 있다. 계엄이 선포되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민의 권리와 행정기관이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하여 대통령에게 계엄선포거절권을 인정하였다.
라. 제4공화국
제4공화국헌법은 국가긴급권에 관하여 이를 보다 강화하기 위하여 대통령에게 방대한 긴급조치권을 부여하였고, 나아가 계엄선포권을 부여하고 있었다. 이러한 강력한 긴급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한 것은 양단된 한국의 평화통일을 위하여 극히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되었다. 제4공화국에서는 9차의 긴급조치가 발동되었다.
김철수《헌법학개론》박영사, 2004
법제처《대한민국법령연혁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