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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대중동 외교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중동 국가에는 북아프리카 국가와 동유럽 국가 일부가 포함되지만, 이 글에서는 서아시아 개념을 적용하여 이들 국가를 제외한 이스라엘,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 이라크, 팔레스타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오만 그리고 예멘 등 13개국을 중동국가로 부른다.
배경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과 국교를 수립한 한국정부에 대한 중동(아랍)국가들의 반한 감정이 고조됨에 따라 1972년 12월 5일 한국 정부는 ‘중동사태에 관한 기본입장’ 발표를 통해 이스라엘은 제3차 중동전쟁에서 점령한 영토에서 철수해야 하며, 팔레스타인 주장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친중동정책이 시작되었다.
경과
한국은 해방 이후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전쟁에서의 피해복구와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유엔총회에서의 지지획득 외에는 중동국가들과의 외교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1957년 당시 한국정부는 터키와 유일하게 외교관계를 수립했을 뿐이다. 1960년대 이후 ‘외교다변화’를 강조하면서 외교관계를 확대해 나갔지만, 이 시기 중동국가 중에서 외교관계를 수립한 국가는 4개국(이스라엘, 이란,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에 불과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1972년 말부터 한국의 대중동 외교가 시작되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아랍산유국의 서방국가들에 대한 ‘석유금수조치(제1차 오일쇼크) 발표’로 한국은 친아랍정책을 추진하였다. 1973년 석유파동으로 경제적 타격을 입은 한국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제한하고 대중동(아랍) 우호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에 힘입어 한국은 오만, 카타르, 수단, 모리타니 등 아랍 5개국과 국교를 수립했으며, 중동지역에 한국 기업 진출의 초석을 놓았다. 
1980년에는 최규하 대통령이 한국인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를 방문하여 정상회담을 가졌고, 1981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인정하는 입장을 표명했으며, 1983년에는 요르단 국왕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이후 자원외교의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한국 정부는 실리주의와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활발한 대중동 외교에 나서고 있다. 2001년 아프간 전쟁과 2003년 이라크 전쟁 파병을 결정하였지만, 우리 정부의 에너지 외교는 큰 변화 없이 전개되었다.
내용
이스라엘을 포함한 12개국과 수교했으며, 이들 중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스라엘은 북한과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고 한국과 단독으로 수교했다. 시리아는 북한과 단독 수교국이다.
참고자료
유달승, 〈한국의 대중동 외교〉; 정은숙 엮음, 《한국의 대개도국 외교: 과거, 현재, 미래》, 한울, 2009.
외교통상부, 《한국외교 60년》, 2009.
집필자
이대우(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최초 주제 집필
2017. 12. 26
최초 주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