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1월 당시 중국을 대표하는 합법정부인 대만과의 외교관계가 수립되었으나,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은 한국전쟁 과정에서 파병을 통해 북한을 지원하였기에 적성국가로 분류되어 외교관계가 없었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은 「6·23 평화통일 외교정책 선언」(약칭 ‘「6·23 선언」’)에서 공산주의 국가에의 문호개방 의지를 표명한 이후, 1974년 9월부터 한중 간의 우편 및 통신에 관한 교류가 허용되었고, 1975년 3월 한국인 중국방문, 7월 전신교류 허용, 1976년 6월 조난당한 한국 어부 무선 귀환, 제3국(홍콩, 일본, 싱가포르)을 통한 간접무역이 시작되었다.
1983년 5월 납치된 중국 민항기가 춘천공항에 비상착륙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한중 정부 사이의 접촉이 시작되었으며, 당시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호칭이 정식 국호로 사용되었다. 이는 당시 중공이 한국정부를 현실적인(de facto) 정체로 인정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1988년 7월 7일 노태우 대통령은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에서 소련과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밝혔고, 마침내 1992년 8월 24일 한중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졌다. 이후 매년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등 활발한 대중외교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2016년 7월 8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드 배치 발표 이후 한중관계는 경색되었으며, 북한문제 해법을 놓고도 한중 간에 미묘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