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제29차 유엔여성지위위원회에 한국은 옵저버로 참석하여 이 회의에서 여성차별철폐협약의 서명과 비준에 대해 논의되고 있는 것을 인지하고 헌법에서 남녀평등을 보장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이 협약에 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었다.
1982년 9월 정기국회에서 협약을 비준하기 위한 움직임이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 여성의원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서명과 비준을 위해서는 협약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국적법을 먼저 고
쳐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즉 국적법 제2조에 부계혈통주의를 규정하고 있었으며, 제9조는 “외국인의 처(妻)는 부(父)와 동시 귀화해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1983년 5월 26일, 한국은 협약에 90번째로 서명하였다. 이후 여성단체들은 협약 비준 가입국가가 되기 위한 방향설정을 위해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정부에게 가족법 개정 등 법률상 여성차별조항의 철폐
를 요구했다.
1984년 8월 30일 정부는 국무총리 주재로 여성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협약의 비준문제를 심의, 이 조약 조문 가운데 당시 민법과 상충되는 부인 및 자녀의 국적 취득상의 평등규제 등 일부 규정을 유보
하고 이 협약을 비준하기로 의결했다. 또한 여성단체가 제안한 호주제도 폐지, 동성동본불혼 조항 개정을 내용으로 하는 가족법 개정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1984년 12월 22일, 협약 비준 동의서를 일부 조항을 유보한 채 유엔 사무국에 송부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61번째 협약 당사국이 되었다. 1987년 국적법과 가족법 개정으로 자녀의 성결정권에 관한 조
항만을 남기고 다른 유보조항들은 모두 철폐하였다.
협약은 전문에 이은 30개 조항은 6부로 분류되어 있다. 제1부는 ‘여성에 대한 차별’의 정의와 가입당사국이 취하여야 할 의무사항을 제시하였다. 제2부는 3개 조항인데, 정치적, 공적 생활에서의 성차
별 철폐에 관한 것이다. 제3부는 교육분야와 고용 및 보건분야에서의 차별철페에 관한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제4부는 여성의 법적 지위와 혼인, 가족관계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유보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제5부와 제6부는 협약당사국의 협약 이항상황을 심의, 점검하는 절차와 방법에 관한 조항이다.
협약 당사국은 협약의 제반 규정을 지키기 위해 채택한 입법, 사법, 행정과 기타 조치의 진전 상황을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고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보고서는 협약 발효후 1년 이내에 그리고 그 후 최
소한 매 4년마다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협약 당사국들이 제출한 보고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철폐위원회(CEDAW)'가 심의 평가한다. 또한 협약은 단순히 국제적 선언이나 결의문이 아니라 협약에 가입한 당사국들이 입법, 사법, 행정적 조치의
이행을 의무화하고 있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여성차별철폐협약은 1985년 1월부터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발생하였다, 또 1986년 2월에 정부의 협약 이행에 대한 제1차 보고서를 제출하였고, 1년 후인 1987년 4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여성차별철폐위
원회의 심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