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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일민주의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이승만 대통령의 한백성주의 정책

조선교육심의회의 홍익인간 교육이념

배경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내적으로 민주주의 질서를 확립하고 대외적으로 북한에 대항하는 반공주의 이념을 강화하여 분단 상황의 극복과 민족통일의 실현이 최대 과제가 되었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한백성(一民)’의 이념으로 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하고 공산주의에 대항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고, 이범석을 명예회장으로 하는 일민주의보급회를 결성하여 전 국민적으로 전개하고자 하였다. 교육 분야에서도 이러한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일민주의 교육이념이 제창되었고, 이것을 주도한 인물은 초대 문교부장관 안호상이다.

경과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은 남북분단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민족적 민주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일민주의(一民主義)’를 제창하였다. 일민주의에 기반하여 국민정신통합, 반공교육, 11기 교육을 강조하였고, 청소년의 이념교육을 위해 194812월에는 학도호국단 창설을 결정, 19499월 중학교 이상 각급 학교의 학도호국단을 조직해 나갔다. 여기에는 당시의 혼란스러운 학원질서를 정상화하고 학생들의 애국정신과 통일의식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었다.

 

19493월에는 민주적 민족교육 연구대회를 개최하여 관련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일민주의 확산을 시도하였고, 사공환(司空桓) 등 문교부 직원 5인은 민주주의 민족교육론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민주의는 자유당 정권이 출발한 이후 정식 정책으로 채택되지 않고, 또한 안호상 장관이 1950년에 퇴임하면서 추진력이 약화되었다. 다만 곧바로 발생한 한국전쟁의 여파로 민족통합을 내용으로 하는 일민주의는 퇴색되고, 반공교육이 전면에 부상하였다.

내용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은 조선교육심의회에서 제정하고, 이후 교육법에 수록된 홍익인간의 교육이념을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한국적 상황에 적합한 교육이념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일민주의의 주요 내용으로 첫째 바른 백성의 실현, 둘째 백성통일, 셋째 세계한백성주의, 넷째 만민동일, 다섯째 백성 첫째주의를 제시하였고, 궁극적으로는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적 민주주의를 주장하였다.

 

안호상 장관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백성주의의 목적은 민족주의요 방법은 백성주의 곧 민주주의다.한백성주의가 민주주의로서는 개인의 돈 힘(금력)의 토대와 표준으로 된 구미식 민주주의인 자본주의적인 개인주의적 민주주의와 또 계급의 권력과 폭력의 토대와 표준으로 된 소련식 민주주의인 공산주의적인 계급주의적 민주주의와 달라, 항상 사람 힘과 인격의 토대가 표준으로 된 신라식 민주주의인 한백성의 민족적 민주주의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일민주의가 강력한 하달식 교육이념이고, 일제시대의 집단주의적 교육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강한 반발이 있었다.

 

특히 민주주의 앞에 민족적이라는 관형사를 제시한 것에 대해, 선동적일 뿐만 아니라 히틀러식의 전체주의를 연상시키는 것이라 하여 불쾌하다는 의견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일민주의는 상명하달식으로 짧은 기간 동안만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교육이념으로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데에 한계가 있었고, 광복 이후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는 데에 제약을 준다는 강한 반론도 있었으나, 좌우 이념 대립 속에서 민족통일을 지향하고, 미국과 소련 어느 쪽의 영향도 받지 않으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는 점에서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있기도 하다.

참고자료

교육50년 편찬위원회, (대한민국 50)교육 50년사 : 1948-1998, 교육부, 1998 

집필자
최광만(충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8. 09. 03
최종 주제 수정
2008. 09.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