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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금융

1990년대 통화금융정책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배경
우리나라 경제는 1980년대 후반에는 전례없는 호황을 누렸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어 이른바 저효율·고비용 구조로 인해 활력을 잃게 되었다. 해외경기 침체와 고유가 속에서 수출 증가률이 떨어졌지만, 대신에 내수 증가로 경제성장률은 크게 낮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물가불안이 고조되고 경상수지가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정부는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여 제조업 경쟁력강화대책을 강구하고 물가불안 및 부동산투기근절을 위한 강력한 조치를 강구하였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이에 발맞추어 총수요관리정책을 시행하였다. 


1993년 새로 출범한 정부는 단기적으로 경기활성화로 경제의 활력을 회복하고 장기적으로 모든 국민의 참여와 창의를 발전을 원동력을 삼고자 신경제5개년계획을 수립하고 1997년까지 이를 실시하고자 하였다. 정부는 재정 금융 행정 등 각 분야의 제도를 개혁하되 성장잠재력 강화, 국제시장기반의 확충, 국민생활 여건의 개선을 주요정책 목표로 제시하였다. 정부는금융개혁 조치로 금융자유화를 완료하고 정책금융의 축소, 각종 여신규제의 축소 폐지 등을 통해 금융기관의 자율성을 높이고 내부경영의 자율화를 통해 금융기관의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는 한편 외환 및 자본시장의 국제화를 확대 추진하였다. 1993년에는 경제정의를 실현하고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금융실명제를 실시하였다. 


1997년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 경제는 대기업의 잇단 부도, 큰 폭의 경상수지 적자, 자본유입 부진 등으로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신뢰가 손상되면서 외환보유고가 급감하고 환율이 폭등하는 외환위기가 11월에 발생하였다. 우리나라 정부는 IMF, 세계은행, ADB 등 국제금융기구의 도움을 받아 외환위기를 수습하고 외환위기 근본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한국경제의 취약점을 개선하기 위해, 금융기관 및 기업의 구조조정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이러한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면서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이 안정되어 가면서 외국자본의 유입이 증가하고, 수출의 급속한 증가로 인해 경상수지가 다시 흑자로 되돌아오고, 외환보유고도 계속 증가함에 따라 외환위기 우려가 줄어든 것은 물론 경제도 다시 활력을 찾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부문과 금융부문의 구조조정은 200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내용
1990년대에 접어들어 자금배분의 효율성을 높이고 금융개방 및 금융의 국제화 추세에 맞추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금리의 가격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 아래 금리자유화가 추진되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1991년 8월 요구불예금 등 일부 단기수신금리를 제외한 모든 금리를 1996년 실질적으로 자유화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금리자유화추진계획’을 수립하여 단계적으로 실시하였는데, 계획보다 빠른 1995년 11월에 마무리되었다. 정부는 은행업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1991년 12월, 1994년 12월 두 차례 은행법을 개정하여 은행경영의 자율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한국은행도 금융기관 자금운용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각종 규정을 개정하거나 폐지하였다. 


정부는 1989년 9월 ‘단계별 환율제도 개편계획’을 발표하고 복수통화바스켓제도를 폐지하고 완전자유변동환율제로 이행하기에 앞서 과도기로서 1990년 3월 시장평균환율제도를 도입하였고, 외환위기 직후에는 변동폭을 대폭 확대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완전한 자유변동환율제로 이행하였다. 정부는 이 제도의 도입과 함게 외환집중제 및 실수요원칙을 대폭 완화하고, 외국환은행 포지션관리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선해갔다. 정부는 자본자유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는데 그 일환으로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한 제한을 완화하였고, 외국인의 국내주식에 대한 직접투자를 1992년부터 허용하고 그 한도를 계속 늘려가고, 채권시장도 1994년부터 개방하였다. 정부는 1992년부터 해외직접투자를 확대해 갔고, 해외증권투자의 범위, 참가자, 한도 등을 계속 확대하였다. 


우리나라의 외환자유화, 자본자유화 등으로 자본유입은 더욱 증가하였지만, 경상수지는 1994년 적자로 돌아선 다음, 1995년, 1996년에는 적자 폭이 더욱 커졌다. 한국은행은 경상수지 적자에 대응하여 무역금융의 융자단가를 인상하고 융자대상을 확대하여 무역금융지원을 통한 수출증대에 힘을 기울었고, 외화대출제도도 신축적으로 운용하였다. 정부는 경상수지를 개선하기 위해 수출용원자재 연지급수입기간을 연장하고 수출선수금영수한도를 확대하는 등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하였고, 적자가 심한 여행수지를 개선하는 노력도 경주하고, 수출산업의 기반이 되는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도 강화하였다. 


외환위기 발생하자 정부는 1997년 11월 IMF에 긴급외화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IBRD, ADB의 금융지원도 받고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도 자금지원도 받았다. 정부는 해외채권은행과 국내금융기관 단기외채의 만기연장을 시도하였고, 외화유동성 확보를 위해 외화표시 외국환평형채권을 발행하였고, 외국자본의 유입을 촉진하기 위해 1997년 말 채권시장을 개방하고 1998년에는 주식시장과 단기금융시장을 전면 개방하고 외국인의 투자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켰다. 


정부는 외환위기를 금융기관과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부실채권의 누적으로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금융기관은 조기에 정리하고 회생이 가능한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합병, 경영진 교체, 조직 및 인력축소 등의 강력한 자구노력을 전제로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증자와 부실채권 정리를 도왔다. 이 정리의 대상은 은행, 종합금융회사, 증권회사, 투자신탁회사, 보험회사, 리스회사, 상호신용금고, 신용협동조합 등의 거의 모든 금융기관이 포함되었고, 많은 부실금융기관이 퇴출, 합병 등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정부는 금융기관에 많은 채무불이행 채무를 가지고 있는 계열기업군에 대해서는 주채권은행과 재무구조개선협정을 채결하여, 부채비율 200% 달성, 상호지급보증해소, 외자유치,계열사 정리 등의 기업구조조정을 추진하도록 압박하였다. 많은 대기업은 채무조정과 신규자금 지원을 매개로 하여 기업의 재무구조 작업이 강력히 추진되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IMF와 정책협의를 하면서 거시경제정책을 실시하였는데, 외환위기 직후에는 물가와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긴축기조를 유지하였다. 특히 외화유동성 확보와 환율 안정을 위해 고금리정책을 시행하여 금리가 폭등하였으나, 외환시장이 안정됨에 따라 금리를 단계적으로 하락하여 명목금리가 처음으로 5% 이하로 낮아졌다. 한국은행은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위해 특별유동성을 지원하고 중소기업과 수출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총액대출한도를 확대하고 무역금융융자한도 및 융자비율 규제를 폐지하였다. 1997년 말 개정되어 1998년 4월부터 개정된 한국은행법에 따라 금융통화운영위원회는 다시 금융통화위원회로 바뀌고 한국은행 총재가 위원장이 되는 동시에 물가안정목표제가 시행되어 물가안정을 위한 통화정책은 강화되었다. 한국은행은 통화운용에서 통화지표를 M3(유동성)으로 변경하고 물가안정목표제를 시행하고 매년 물가안정목표를 발표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은 한국은행 산하의 은행감독원, 재무부 산하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으로 분산되어 수행되었는데, 1998년 시행된 ‘금융기구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금융감독위원회와 그 집행기관인 금융감독원이 설립되었고, 이에 따라 은행, 증권, 보험 등 업종별 금융감독기구가 통합금융기구로 재편되었다. 이 감독기구는 외환위기 이후의 금융기관 및 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중심적인 기관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은행은 별도의 예금보험기구를 가지지 않아 한국은행이 묵시적으로 예금보장을 시행하여 왔으나 비은행금융기관은 1980년대 초부터 금융기관별로 예금보험제도를 운영하였다. 은행권은 1995년 12월 제정된 예금자보호법에 의거하여 1996년 6월 예금보험공사가 설립됨에 따라 비로소 명시적인 예금보험제도를 가지게 되었다. 이 예금자보험을 관리하는 예금보험공사는 한국은행과 함께 외환위기 이후의 금융불안에 대처하는 주요기구가 되었다. 그리고 예금보험공사는 금융감독원, 자산관리공사 등과 함께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담당하게 되었다.
참고자료
이영훈, 박기주,, 이명휘, 최상오,『 한국의 유가증권 100년사』, 증권예탁결제원, 2005.
이영훈, 배영목, 박원암, 김석진, 연강흠, 『한국의 은행 100년사』, 2004.
韓國産業銀行, 『韓國産業銀行五十年史』, 2004.
한국은행, 『우리나라의 금융시장』, 2004.
한국은행, 『우리나라의 금융제도』 1999, 2006.
한국은행, 『우리나라의 통화정책』, 2005.
韓國銀行, 『韓國銀行50年史』, 2000.
韓國銀行, 『韓國의 金融經濟年表(1945-2000)』, 2000.
韓國證券業協會, 『韓國證券業協會50年史』, 2004.
집필자
배영목(충북대 경제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8. 08. 28
최종 주제 수정
2008. 0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