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경제장관협의회 결정(5월)
1978년 3월 박정희대통령지시
1978년 경제장관협의회 결정(4월, 10월, 11월)
1979년 경제장관협의회 결정(4월)
1979년 투자사업조정위원회(4월, 5월)
현대양행 창원공장(現代洋行昌原工場) 및 옥포조선소(玉浦造船所)에 관한 대책(1979. 5. 25) 발표
현대양행 창원공장(現代洋行昌原工場) 및 옥포조선소(玉浦造船所)에 관한 대책(1979)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발전설비제작사업을 「현대양행」 및 「현대중공업」을 묶는 제 1그룹과 「대우중공업」 및 「삼성중공업」을 묶는 제2그룹으로 나누어 이원화한다. 단 발전설비제작부문의 제2그룹인 「대우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상호합작 내지 통합방식으로 운영하되 터빈제네레이터 부문의 제작을 위한 설비투자에 있어서 「현대양행」과 중복된 대형설비부분의 도입은 상공부장관의 사전인가를 받도록 한다.
둘째, 발전소 건설 입찰시(원자력발전소 제외) 위 2개 그룹별로 참여한다.
셋째, 대우조선의 옥포조선소 건설은 발전설비 이원화를 조건으로 「대우」가 계속 추진한다.
넷째, 「현대양행」은 재무구조 내실화를 위하여 창원(昌原)사업과 관련없는 방계회사를 1980년 6월까지 처분토록 한다.
다섯째, 「현대양행」의 자기자본 충실화를 위해 1980년 6월까지 일정률 범위내에서 현대그룹이 증자토록 하고 필요한 경우 산업은행도 일부 출자한다.
여섯째, 디젤엔진의 생산을 위한 기존 3사(「현대엔진」, 「쌍용중기」, 「대우중공업」) 이외에 신규전용설비의 투자는 향후 인정하지 않는다.
일곱째, 「대우중공업」의 중장비제작을 위한 「캐터필라(Caterpillar)」사로부터의 기술도입은 발전설비제작업체의 조정 확정 후 별도 논의한다.
여덟째, 대단위 종합기계공장의 육성을 위하여 지원체제면에서 근본적인 개편조치를 별도 강구한다.
현대양행 창원공장 및 옥포조선소에 관한 이상의 대책은 문제점이 있었다. 「현대중공업」이 「현대양행」에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으나 「현대중공업」 역시 투자여력이 없었고 투자환경도 나빠 자금을 투입할 이유도 없었다. 「옥포조선소」 역시 대우는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었다.
<<조선일보》>>, 1979년 5월 26일.
경제과학심의회의 <<우리경제의 당면과제와 대책》>> 청와대회의 자료, 1979. 3. 31.
경제기획원,《경제안정화 종합시책》, 1979. 4. 17.
경제기획원,《現代洋行昌原工場 및 玉浦造船所에 관한 대책》, 1979. 5. 25.
박병윤 <중화학공업계의 내막> 《신동아》89, 1980. 5. pp. 194-211.
박영구 <정책시그널로 본 70년대 중화학공업조정의 미시적 연구>《무역경영논집》제10집 부산외국어대학교 무역경영연구소, 1994. 12, pp. 5-28.
상공부,《대단위 기계공업육성방안》, 1978. 4.
한국개발연구원,《안정화대책방향》청와대회의 자료, 1979. 3.
한국개발연구원,《경제안정화시책 자료집(상)》, 1981.
한국개발연구원,《경제안정화시책 자료집(하)》,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