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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중소기업

전자공업단지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1971년 상공부의 전자공업단지조성 발표

1973년 대통령의중화학공업화 선언 내용

1973년 중화학공업육성계획

1973년 중화학공업화정책선언에 따른 공업구조 개편론

배경
중화학공업은 (1) 산업부문간의 상호의존성이 높기 때문에 원료의 중간재 및 제품간의 생산이나 기술적 연관관계가 밀접하고, (2) 고도의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용수, 전력 등의 거대유틸리티의 지원이 요청되며, (3) 이러한 산업 중 일부는 공해산업이기 때문에 공해의 집중화 또는 공동방지의 대책이 강구되어야만 하고, (4) 막대한 기술인력의 확보가 요청된다. 


이 때문에 업종별로 최적지를 선정하여 동종업종이나 관련산업을 집단적으로 유치, 개발함으로써 산업부문간 연관효과의 조성, 공동지원, 공동시설의 이용, 기능노동력의 확보 및 공해대상지의 한정과 공해 집중방지 등에 의한 투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정부는 전국적으로 입지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투자비를 절감하는 것과 동시에 연관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철강기지, 종합화학기지(여수, 광양), 비철금속기지(온산), 종합기계공업기지(창원), 조선기지(거제도 일대), 전자기지(구미) 등 공업단지를 건설했다.
내용

건설부(현 국토해양부)는 1969년 가을 구미에 내륙공업단지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1971년 상공부는 구미공단에 18만 3천 평의 부지를 매입하고 전자부품공장 22개, 전자기기공장 11개 등 33개 전자업체가 1973년까지 입주하는 전자공업단지 조성을 발표하였다. 그 해 11월 「구미전자공업기지」 1단지 공사가 시작되어 1973년 10월에 1,874천 평이 완공되었다. 1973년 1월 7일 구미전자공업단지 확장계획이 수립되었다. 이는 전자공업의 계열화, 전문화를 기하고 투자 환경조성 및 유치를 위해 현 15.9만 평을 200만 평으로 확장하는 내용이었다. 정부는 1976년까지 300여 공장을 건설하여 가정용 수출전자기기의 부품공급지로 만들 계획이었고 1981년에는 총 1,087개 전자공장에서 43억 달러 상당의 전자제품을 생산하며 이중 25억 달러를 수출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전자공업단지는 제1, 제2 전자공업단지로 나누어 제1단지는 노동집약적인 부문, 제2단지는 기술집약적인 단지로 육성하도록 하였다.

 

제2단지를 기술집약적인 단지로 한다는 것은 1976년 이후에 300만 평 규모로 조성하여 반도체 및 집적회로(集積回路)를 생산할 뿐 아니라, 이를 사용한 전자계산기를 비롯하여 자동제어장치 등 산업기기를 생산수출할 전자기술의 집약지로 개발하여 1976-81년간 200개 전자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이었다.


정부는 구미전자공단에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외국인투자 100%를 허용하고 5년 동안 100% 외국인투자에 대해 법인세, 소득세, 취득세를 면제, 그 후 3년간 50% 감면과 함께 투자액의 이익배당금과 잉여금의 분배금 과세도 5년간 면제하는 등의 유인책을 실시했다.


물론 국내기업에게도 공업단지 입주에 따른 유인책이 실시되었다. 그 결과 1978년 말 1단지에는 금성사 구미공장, 금성전선(주), 구미통신 케이블공장(건설기간, 1978.11-79.7, 규모는 기존 18,000 M/T/연, 증설 후 20,000 M/T/연), 「대우전자」 구미공장(1977.10-79.10), 「대한전선」 구미공장(77.6-80.12) 등이 입주했고 2단지에는 「대한반도체(주)」(계약일, 78.4.29), 「(주) 금성사」(78.8.11), 「한국화약」, 「동양정밀」(78.8.14), 「대한통신」, 「선경반도체(주)」(78.8.11), 「삼성전관」(78.8.14), 「금성전기」(78.8.14), 「아남(亞南)반도체」등이 주요업체로 입주했다. 1978년 1단지 전자업종 입주 업체는 82개 업체로, 가동 57개 업체, 건설중 18개 업체, 미착공 7개 업체가 있었고, 전자 82업종은 기기부문 24개, 부품부문 41개, 연관부문 17개 업체였다. 2단지는 1978년 11월 말까지 전자업종 업체가 건설중 1개(부품)업체, 미착공 9개 업체로 총 10개 업체가 입주했다. 1979년 말에는 제1, 2 전자공업단지에 200여 업체가 입주 완료되었다.


구미전자단지는 첫째, 전자부품 공급원의 집중화, 둘째, 기술정보의 상호교환, 셋째, 단지화로 인한 원가절하, 넷째, 수출의 편리, 행정관리의 일원화를 이루어 한국전자공업수출의 핵심역할을 수행했다.

참고자료

국무총리기획조정실,《중화학공업의 오늘과 내일》, 1973.

서현진,《끝없는 혁명-한국 전자산업 40년의 발자취》 이비컴, 2001.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중화학공업 추진현황》, 1979.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한국공업화발전에 관한 조사연구, 제2권, 중화학공업정책사》, 1979.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한국공업화발전에 관한 조사연구(Ⅲ): 정책결정과정의 이면사》, 1979.

집필자
박영구(부산외국어대학교 상경대학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