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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중소기업

산업단체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1960년대 수출지향정책으로의 전환과 촉진
1970년대중화학공업화 정책

배경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공업화속도는 매우 빨랐지만 그 과정에서 자본의 부족은 심각한 병목으로 언제나 작용했다. 당연히 정부는 연관효과와 학습효과가 큰 산업에 자원을 집중 배분하였다. 이에 따라 공업발전 과정에서 적극적 역할을 하여온 기업들은 각 산업별로 정부자원의 배분을 보다 안정적으로 크게 확보하려는 산업단체를 만들어나갔다. 정부 역시 공업이 점점 중화학공업화, 고도화되면서 각 산업이 생산과 기술면에서 수평적으로 혹은 수직적으로 연관성을 확대시켜야 하는 종합산업의 성격을 띠게 되므로, 생산 및 기술의 전문화와 계열화의 원칙에 입각하여 관련 산업이나 부문 사이에 조화와 협조가 갖추어지도록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기업들과 정부의 이해가 일치함에 따라 주요 산업내에서 협회, 협의체, 진흥회 등이 구성되었다.

내용

산업단체는 각 산업별 단체와 산업간을 총괄하는 산업단체로 나누어진다. 각 산업단체는 전자공업협회, 조선공업협회, 자동차공업협회, 증권협회 등 각 산업별로 구성되는 것이고 총괄산업단체는 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계의 총괄산업이익단체이다. 이러한 산업단체는 각 시기 해당산업의 발전과 한국경제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여왔다. 물론 이익단체라는 점에서 당시에는 부정적 역할도 컸지만, 총괄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각 발전단계별 시기에 산업계의 요구를 대표하여 정부에 전달하고, 정부 역시 이들을 통해 산업계의 현실과 애로점을 파악함으로써 합리적 정책을 세울 수 있었던 장점이 있었다.



몇몇 산업단체의 주요활동을 예로 보면 다음과 같다.



가. 산업별 단체
1) 1960년대
5. 16 이후 수출지향정책으로 전면 전환했을 때 자본부족과 자본동원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때 설립된 「증권업협회」는 내자동원을 위한 여러 주요한 건의와 역할을 제시했다. 1964년 7월 2일 「증권업협회」는 내자동원과 정부소유 주식 처분방안에 관한 건의를 했고 1964년 10월 15일에는 증권시장육성과 정부소유주식 처분에 관한 건의를 정부에 제출했다. 1966년 4월 30일에는 「증권업협회」가 다시 증권시장 육성에 관한 건의를 정부에 제출하였으며 6월 21일에는 대통령에게 증권시장 활성화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제조업에서는 1962년 4월 「한국전기공업협동조합」과 5월 「한국통신공업협동조합」이 설립되었으며 1967년 1월 12일에는 「한국전자공업협동조합」이 창립되었다. 이들 산업단체들은 1960년대 나아가 1970년대 한국 전기, 전자산업의 발전과 수출에 주요한 공헌을 하였다.


2) 1970년대 이후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가 진행되면서 「기계공업진흥회」는 1973년 6월 11일-8월 10일 에 걸쳐 전면적인 「기계공업실태조사」를 실시했다. 1972년 말을 기준으로 상공부 기계공업국과 협조하여 현지업체를 방문하면서 업체개황, 재무제표(손익계산서, 대차대조표), 종업원현황(분기별 고용인원, 학력별분포, 초임금수준, 고용계획, 생산직종업원 개인별 인적사항), 생산 및 출하실적과 계획, 원자재 및 부분품 소요량, 시설(시설명세표, 신설증설개채 계획), 국제협력상황(차관, 외국인투자, 기술도입, 연구개발), 종업원 훈련상황(훈련실적 및 계획, 기술자 초빙상황), 기술적 사항, 기타 등을 조사하였다. 이때 기계공업진흥회는 휴업 또는 폐업 중인 681개 업체를 제외한 2,535개 사업체를 조사하였고 이 결과는 <기계공업총람>으로 1974년 발간되어 산업정책과 한국 중공업 발전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기계공업진흥회」는 1978년 8월 1일-9월 15일에 걸쳐서도 기계공업실태조사를 실시하는 등 한국기계공업과 산업발전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1970년대에도 역시 한국수출을 주도했던 전자공업도 1976년 「한국전자산업진흥회」가 발족되어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석유위기로 한국경제가 위기가 처하자 1976년 11월 3일 「해외건설협회」가 설립되었는데 이 산업단체 역시 외화획득에 주요한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의 위기 극복에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1980년대 들어와 한국자동차산업이 세계산업으로 성장하자 1988년 9월 1일 「한국자동차공업협회(KAMA)」가 창립되어 역시 1980년대 이후 자동차산업의 수출과 발전에 공헌하였다.


나. 총괄 산업단체
총괄산업단체로 가장 주요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은 전국경제인연합회다. 1968년 3월 28일 기존의 「한국경제인협회」가 「전국경제인연합회」로 개명되어 대기업들의 정부창구로서 역할을 하였다.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점차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상공회의소」의 역할은 분리되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한국경제 전체에서 대기업들의 요구를 반영한다면 「상공회의소」는 전국 각 지역조직을 가진 지방 기업들의 요구를 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산업단체와 정부는 대립과 상호보완의 관계를 가지며 한국경제발전에서 양측 모두 큰 역할을 하여 왔다. 1960-70년대 중반까지 당연히 정부가 산업단체를 보다 많이 이용하는 구조였다면, 1970년대 후반 이후는 정보력에서 우위를 가지게 된 산업단체들의 정책에 대한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참고자료

박영구, <중화학공업의 효율성에 관한 연구-70년대 산업정책의 경제사적 연구>《경제학연구》 제43집 제1호, 한국경제학회, 1995. 7, pp. 103-124.
박영구, <1970년대 중화학공업과 경제력 집중>《경제연구》제21권 제3호, 한국국민경제학회, 한국경상학회, 2003. 9, pp. 207-232.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우리나라의 중화학공업화정책(해설)》, 1973.
홍덕률, <한국대자본가의 조직화와 계급실천에 대한 연구> 《한국사회학》제28집, 1994 봄, pp. 51-70.

집필자
박영구(부산외국어대학교 상경대학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