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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금융

제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77-81)(1976년 6월 18)

배경

3차 경제개발계획은 석유위기 등 국제경제 정세의 격변에 따라 교란 작용이 커서장기개발계획의 지침으로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단기적인 변화에 적응하는 것에 주력하였다.


이 기간 동안 우리나라 경제는 국제여건의 급변으로 양적 성장이 둔화된 것은 물론이고 여러 점에서 구조적 취약점이 드러났다. 기업의 공개에도 불구하고 재무구조도 개선되지 않고, 자원의 순조로운 공급에서 차질이 나타났으며, 수출시장의 확대를 전제로 하는 공업화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국제석유파동에 따른 경제성장의 둔화와 물가상승률의 증가, 국제수지의 악화 등 거시경제 여건도 더욱 나빠지게 되었다.


정부는 지난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공업화와 고도성장은 어느 정도 달성한 만큼 제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통해서는 성장, 형평, 능률을 기본이념으로 하여 도약의 발판을 질적인 구조개선에서 찾겠다는 정책기조를 새로 설정하였다. 정부는 이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자립경제를 실현하고 사회발전을 추진하며 기술혁신과 능률향상을 실현하여 구조개선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내용

첫째, 자력성장경제를 실현하기로 하였다. 1970년대 초의 석유위기라는 자원파동을 겪으면서 우리나라 경제는 국제수지의 균형, 투자재원의 자력조달, 산업구조의 고도화 등을 통한 자력성장 구조의 실현이라는 중요한 과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투자자원의 조달을 위해 1976 21% 정도인 국내저축률을 1981년에는 26%로 높여 계획기간 중 총투자의 92%까지를 국내저축으로 충당하고 1981년에는 완전 조달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하였다


정부는 이와 같이 외화의존도를 낮추어 국제수지의 적자 요인을 줄이는 한편 수출의 연평균 증가율을 16%, 수입증가율은 12% 수준으로 유지하여 1980년부터는 무역수지의 흑자기조를 달성하고 해외건설과 관광수입을 늘려 경상수지 흑자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기계, 전자, 조선 등과 같이 고용효과가 크면서 기술 및 숙련노동 집약적인 산업을 집중·육성함으로써 중화학공업의 비중을 제조업에서 50% 이상으로 증가시켜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자 하였다.


둘째, 사회개발을 촉진하기로 하였다. 사회개발은 경제개발에 밀려 독자적인 영역이 좁았으나 경제발전으로 그 증폭의 여지가 넓어졌다. 정부는 제4차계획에서 경제발전 단계에 적합한 소득분배와 생활환경 개선에 중점을 두고, 고용, 교육, 보건,직업훈련 등을 강화하는 한편 주택공급의 확대, 공해방지에 노력하기로 하였다.


셋째, 기술을 혁신하고 능률을 향상시키기로 하였다. 이 계획을 통해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고 사회전반의 능률을 높이고자 하였다. 기술개발능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과학기술투자를 1981년에는 GNP 1% 수준으로 높이기로 하고 경제운용체제도 능률 본위로 전환시키겠다는 계획을 제시하였다. 특히 경제운용합리화 방안은 민간의 창의와 시장경제원리의 창달을 의미하는데, 공정경쟁질서의 확립과 경영합리화, 개방화 촉진, 민간자율화 폭을 확대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정부는 계획기간중 경제성장률을 연 9.2%로 설정하였고 1인당 GNP 1981년에는 1,512달러를 달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이를 위해 투자율을 26.2%로 유지하고 재원의 92.4%를 국내저축으로 충당하고 1981년에는 국내저축률을 26.1%로까지 높여 재원조달의 완전한 자립을 목표로 하였다. 그리고 물가상승률 8-9%로 유지하고 통화증가율도 20% 내외로 유지하기로 하였다. 중화학공업의 비율은 1975 42.4%에서 1981 49.5%로 높이고, 광공업의 비중도 1975 29.7%에서 1981 40.9%로 높이고자 하였다. 국제수지는 1980년대까지 무역수지 균형을 달성하고 1979년에는 경상수지 균형도 달성하고자 하였다.


4차계획의 실적을 간단히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실질경제성장률은 9.2%를 목표로 하였으나, 실적은 5.5%로 목표에 미치지 못하였다. 이 기간에 경제성장률이 크게 낮아졌고, 특히 1980년에는 -6.2%로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이 시기에 제2차 석유파동으로 물가불안이 나타면서 물가상승률이 연평균 19.7%에 달하였다. 인구증가율은 1.59%를 목표로 하였으나 그 보다 낮은 1.55%에 이르렀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77 847달러이었으나, 1981년에는 1,607달러에 이르렀다. 투자율은 35.5%를 목표로 하였으나, 그 목표에 훨씬 못미치는 26.6%에 이르렀다. 국민저축률은 24.2%를 목표로 하였는데 그와 비슷한 23.9%에 이르렀다. 해외저축률은 2.0%로 대폭 낮게 잡았으나, 내자동원의 부족으로 11.2%로까지 늘어났다. 이 기간에 산업구조는 계속 고도화되어 제조업에서 중화학공업의 비중이 53%에 이르게 되었고, 광공업의 비중은 40%에 이르게 되었다.


수출은 1977 100억 달러에서 1981 208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크게 늘어났으나, 수입은 상당히 억제되어 243억 달러에 그쳐 경상수지 적자가 40억 달러에 불과하였지만, 그 동안의 적자누적으로 5년간 외채가 325억 달러로 증가하여 1981년에는 세계 4대 채무국이 되어 외채상환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참고자료

經濟企劃院,《開發年代의 經濟政策》, 1982

經濟評論社,《韓國經濟百年史》, 1981

柳漢晟,《韓國財政史》광교, 2002

李憲昶,《韓國經濟通事》법문사, 1999

韓國開發院, 《韓國經濟半世紀政策資料集》, 1995

韓國開發院, 《韓國財政 40年史》 第三卷, <財政關係法令 및 主要政策資料>, 1990

韓國開發院, 《韓國財政 40年史》 第六卷, <財政運用의 時代別 分析>, 1990

韓國銀行, 《韓國의 金融·經濟年表(1945‐2000)》, 2000

한국은행, 《韓國銀行 50年史》, 2000

집필자
배영목(충북대 경제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