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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해양수산

조선우증식계획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조선우증식계획
배경

총독부 통계에 의하면 조선소는 1910년부터 꾸준히 늘어나 1923년에는 사육두수가 161만두에 달하였으나 그 후 약간 줄어들어 1920년대 중반에는 160~157만두 수준이었는데 총독부는 장래 280만두 정도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우선 1929년부터 15년간 60만두의 축우를 증식하는 축우증산계획을 수립하였다. 총독부는 이를 위해 1929년 이후 각 도 도비에 5만엔(나중에 4만엔으로 삭감)을 보조하기로 하고 ① 번식 모우(牡牛) 설치, ② 축우 공제, ③ 생산장려기술원 배치 등과 같은 대책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1936년까지 8년간 약 11만두 정도 늘어나는데 그쳐 15년간 60만두 증식이라는 원래 계획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이처럼 소 증식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군용 우피와 식육 확보가 시급히 요구되었고, 국내 농업 생산 확충을 위해 농경 축력, 자급 비료(구비) 확보도 필요했으며, 또 일본과 만주에서 조선소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어 총독부는 종전의 계획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여 1938년부터 20년간 조선우증식계획을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내용

조선우증식계획은 1938년부터 1957년까지 20년간 소의 개량, 증식을 실시하여 사육두수를 2,558,415두로 확대하고, 증식된 소 가운데 일부는 일본과 만주에 수이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하였다.


① 자질 유지 개선에 관한 시설
- 표준 체형 설정 : 각도의 축우 형질조사를 바탕으로 표준체형을 설정.
- 종우 규칙 제정 : 현행 보호우 규칙을 폐지하고 종우규칙을 제정하여 표준체형에 기초한 종모우(種牡牛) 검사를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해서 종모우 자질을 유지.
- 종모우의 충실 : 종모우 설치 두수는 성빈우(成牝牛) 60두에 1두를 표준으로 배치.
- 종모우 생산지구 설정 : 우량 모우를 생산하여 종모우 공급에 쓰기 위해 종우 생산육성에 적합한 지구를 선정하여 가능한 한 도농회가 경영. 서선 6개도는 각 2개소씩, 그 외 7개 도는 1개소씩, 총 19개소에 원종 모우 38두(1개소에 2두), 원종 빈우 1,900두(1개소에 100두)를 수용하고 전임 기술원의 지도하에 제4차 연도 이후 매년 종모우를 평균 약 430두 생산 공급.


② 생산장려에 관한 시설
- 번식빈우 충실 : 가성 모우를 배제하고 모우를 사육할 것. 번식에 사용될 수 있는빈우의 도살을 제한할 것. 군농회에서 번식 모우의 예탁사업을 확충하여 매년 1개군 평균 30두씩, 10년간 300두로 할 것.
- 암송아지 보유 장려 : 번식 빈우 충실을 위한 한 방법으로 우량 암송아지 사육에 노력할 것.
- 번식 성적 향상 : 성빈우의 생산 능률 향상을 꾀하여 번식 빈우의 충실과 생산 증가를 확보할 것.


③ 사육우 경제 향상에 관한 시설
- 축력 이용 증진 : 경운과 수확 조제 작업 효율을 향상시키기 위해 축력이용 개선 농구를 보급할 것.
- 구비(廏肥) 증산 이용 : 1두당 성우 2천관, 송아지 1천관 생산을 목표로 구비 증산 이용에 노력.
- 거세 장려 : 경기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평안남도, 함경남도에서는 거세 적령 수소(만 2세 이상 4세 미만)의 10%, 그 외 8개 도에서는 2%, 약 8천두에 대해 거세를 실시.
- 비육 실시 장려 : 경기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평안남도, 함경남도에서는 매년 약 5천두를 목표로 거세 후 1년 이상 경과한 거세우 및 생산력이 감퇴한 빈우를 비육으로 할 것.
- 사료 충실 개선 : 공동 채초지 설정, 야건초 적기 채취·조제·저장 등.
- 우피 개량 조성위생시설 확충, 공제 사업 통제 확충, 우계(牛契) 지도 조성, 예탁사업 장려, 소 구입 자금 융통 알성


④ 거래 개선에 관한 시설
- 가축 시장령 제정, 축우알선 기관의 설치


⑤ 지도장려기관의 개선 충실
- 직접 지도 직원 : 생산장려군에 각 1인의 산업기수, 군농회에 평균 5인의 지도원을 배치하고 도에 2인, 생산장려군을 제외한 110개 군에 각 1인의 산업기수를 배치.
- 지방청 직원 : 전국에 기사 2인, 기수 11인을 배치하고 제2차 연도와 제3차 연도에 기수 2인씩을 기사로 전환하고 제4차 연도 이후 기사 6인, 기수 7인을 배치.
- 본부 직원 : 초년도 이후 기사, 속(屬) 각 1인, 기수 3인, 고원(雇員) 2인을 증원 배치.


그러나 전시체제하에서 노동력과 비료 부족이 더욱 심해지자 총독부는 축력과 축분 공급 확대를 위해 기존의 축우증식계획을 1944년부터 강화하기로 하였다. 즉 1944년 축우증식계획을 전년에 비해 배로 늘리고, 이를 위해 농회에 위탁하여 소 구입보조금을 주어 표준농가에 소를 배치하기로 하였다.


이와 같은 대대적인 소 증식개량계획 하에서 실제 사육두수는 1939년 약간 감소하였다가 1940년, 41년 크게 늘어나 1941년에는 1,753,556두로 과거 최고치를 기록하였는데, 그 후 다시 빠르게 줄어들어 1944년에는 1,624,827두로 1930년대초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편 사육농가는 매년 늘어나 1942년에는 145만호에 달하였는데 이는 전체 농가의 48%로 여전히 전체 농가의 52%는 농업생산, 농산물 운반 등에서 매우 중요하게 이용되던 소를 소유하지 못하였다. 농가당 축우수를 보면 최대 사육두수를 기록한 1941년조차 0.56마리에 불과하였으며, 특히 지역차가 커 1942년 전라북도의 농가당 축우수 0.29마리를 비롯하여, 충청북도 0.34마리, 전라남도 0.35마리 등 경기 이남 지방은 전국 평균 또는 그 이하 수준이었다. 농업 생산이 가장 왕성한 중남부 농업지대에서의 이와 같은 축력 부족은 결국 농업생산력 발전에 커다란 제약요인으로 작용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매년 상당수의 축우가 일본으로 반출되고 있었다. 조선소는 성질이 온순하고 체격이 강건하여 일본에서 일찍부터 크게 선호되었는데 전시체제하에서 농사에 사용되던 일본말이 군용으로 징발되면서 그 보완으로 조선소의 중요성이 더욱 커져 매년 상당량 반출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군수물자인 우피, 통조림 등을 생산하기 위해 많은 소가 징발, 도살되었으며, 또 가솔린 등 운송원료의 부족으로 화물자동차가 운행할 수 없게 되자 우차에 사용하기 위해 다수의 건장한 소가 징발되기도 하였다.

참고자료

朝鮮總督府農林局,《朝鮮の農業》, 1935

朝鮮總督府,《朝鮮總督府時局對策調査會諮問案參考書》(畜産ノ積極的獎勵ニ關スル件)1938

朝鮮總督府,《重要農林産物增産計劃の槪要》, 1941

印貞植,《朝鮮農村再編成の硏究》人文社, 1943

小早川九郞,《朝鮮農業發達史》政策篇, 朝鮮農會, 1944

朝鮮總督府,《朝鮮總督府統計年報》, 1944

朝鮮銀行調査部,《朝鮮經濟年報》, 1948

朝鮮總督府農商局,〈昭和18年 第84回帝國議會說明資料〉(民族文化硏究所編《日帝下 戰時體制期 政策史料叢書》第18卷, 2000年)

〈增産計劃等調書〉(民族文化硏究所編《日帝下 戰時體制期 政策史料叢書》第81卷, 2001)

한국농촌경제연구원,《한국 농업·농촌 100년사》상, 농림부, 2003

집필자
배민식(국회도서관 입법정보연구관)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14. 0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