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업무법」
1945년 군정청 문교부 기상국장 겸 중앙관상대 초대 대장으로 임명된 이원철은 조선총독부 기상대를 접수하고 인천본대를 부대장 국채표(鞠採表)에게 맡기었다. 전국의 측후소가 24개였는데 한국인 직원은 12명밖에 되지 않아 한 곳에 한 사람씩 배치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할 수 없이 일본인 직원들을 당분간 남게 하고 한국인 전직자들을 불러들이고 신규 채용을 하여 충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1948년 중앙관상대 부설 기상기술원양성소를 만들어 단기 교육으로 기술자들을 확보하였다.
1949년 8월 문교부 소속 하에 국립중앙관상대(인천 소재)가 발족됨과 동시에 14개 측후소와 2개의 출장소가 설치하여 기상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중앙관상대는 1949년부터 국제기상전보식을 채용하여 기상업무를 개시했는데, 1956년까지는 북한과 중공이 기상관제를 실시하여 업무에 지장이 많았다.
가. 중앙관상대(1949-1981)
1961년 초대 이원철 박사에 이어 국채표 박사가 2대 중앙관상대장에 취임하였고, 1962년 7월에는 중앙관상대가 문교부로부터 교통부로 소속을 옮기게 되었다. 1967년 4월 과학기술처의 발족을 계기로 중앙관상대는 다시 과학기술처로 소속을 옮겼다. 당시 기상행정 조직은 본대와 17개 측후소, 농업기상관측소, 기상송신소, 기상기술양성소 및 4개의 공항 출장소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총 정원은 309명이었다.
중앙관상대는 1971년 1월부터 자동인공위성사진수신장치를 가동하였고, 업무의 전산화를 위해 기상 통계의 전산화를 위한 작업을 시작하였다. 기상연구와 기상인의 훈련을 위하여 세계기상기구의 주선으로 정부와 UNDP 공동으로 중앙관상대 내 기상연구소 설립사업을 1973년 3월에 시작하였다. 기상연구소 설립사업이 종료됨과 때를 같이 하여 1978년 4월 중앙관상대도 개편하여 기상연구소가 설립되었다.
나. 중앙기상대(1982-1990)
기상재해의 예방 등을 위한 기상서비스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고조됨에 따라 1981년 12월 중앙관상대를 중앙기술대로, 부산, 광주, 강릉 지대를 지방기상대로 각각 명칭을 바꾸었으며, 1982년 4월 완도분실을 측후소로 격상시키고 안동측후소도 신설하였다. 1986년 12월 기상연구소 밑에 소백산기상관측소를 신설하고 배경대기관측 업무를 개시하였다.
다. 기상청(1991-)
1990년 UN의 ‘국제자연재해경감 10개년계획(IDNDR)' 선포를 시발점으로 기상분야의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함과 아울러 기상재해예방 및 기상 수요의 급증 등 기상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이에 따라 1990년 12월정부조직법 및 중앙기상대 직제를 개정하여 기상에 관한 업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중앙행정기관인 기상청으로 확대, 개편하고, 기획국의 업무를 확대하여 그 위상을 강화하였다.
1994년 9월 항공교통관제기상대(대구)를 신설하고 기상재해 빈발지역인 태백산간 및 영서남동지역의 기상감시 강화 및 대민기상지원을 위해 영월기상대를 신설하였다. 또한 1995년 12월에는 지진에 대한 재해 방지 기능 강화를 위해 지진 분야의 업무를 보강하였고, 흑산도 근해와 서해남부지역의 기상 정보 제공과 방제 지원을 위해 흑산도 기상대를 신설하였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한국과학기술30년사》, 1980
과학기술처,《과학기술처30년사》, 1997
기상청,《기상연감》, 2002
교육과학기술부 홈페이지(http://www.mest.go.kr/)
기상청 홈페이지(http://www.km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