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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구 공산권 과학기술협력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한중 과학기술협력협정」

「한러 과학기술협력협정」

추진경과

구 소련과 1990년 9월 국교체결 직후부터 한국 정부는 구소련 (1991년 이후는 러시아)과 과학기술협력 사업을 정부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 결과 1990년 12월 한-소(한-러) 과학기술협력 협정이 체결되었고 1년 뒤부터 발효되었다. 러시아와의 교류협력 사업은 1990년 중반부터 헝가리를 비롯한 구 공산권 국가들로 점차 확대되었다.


중국과의 협력 사업은 수교 이전인 1992년 한국 과학기술처 장관이 중국을 방문하여 양국 장관회담을 개최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이에 따라 양국과의 과학기술협력을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근거로서 1992년 「한·중 과학기술협력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은 5년간 유효하며, 이후 한 나라가 6개월 전에 협정의 종료의사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는 한 5년씩 계속하여 유효하다고 규정하여 이후로도 양국간의 과학기술협력의 근거로 작용하였다.

배경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양분하던 사회주의/공산주의권 국가들은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분열하기 시작하였다.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된 고르바쵸프가 개혁개방 정책을 표방하자 동유럽에서도 개혁개방과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이런 바람은 결국 1989년 봄 헝가리와 폴란드에서 공산당 일당 독재를 종식시키고 복수 정당제를 도입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정당체제의 변화는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체제까지 바꾸기 시작하여, 40여년 이어져오던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자본주의식 시장경제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헝가리는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동유럽 공산주의와 서유럽 자본주의 사이에 쳐진 이른바 ‘철의 장막’을 걷어버리기로 결정하고,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지대에 쳐져 있던 철조망을 1989년 5월 걷어버렸다. 이후 동독과 서독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베를린 장벽도 철거되었고 동독은 1990년 서독에 흡수통일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은 사회주의/공산주의권 국가들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소련마저도 1991년에 붕괴시켜버렸다.


사회주의/공산주의권 국가들이 붕괴되기 이전 시기 남한은 이들 국가들과 거의 교류하지 않았다. 휴전선을 맞대고 대치하고 있던 북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사회주의/공산주의권 국가들이 하나 둘 붕괴되어버린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남한은 적극적으로 구 공산권 국가들과 교류협력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내용

구 소련의 과학기술 수준은 상당히 높았으므로 구소련, 러시아와의 교류협력 사업은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을 이전받고 고도로 훈련된 과학기술자들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국내에 유치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과학기술 교류협력 사업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6개의 공동연구센터를 설치하였다.
반면 중국과는 과학기술의 이전보다는 교류, 협력 활동 자체에 중점을 두었다. 매년 1회씩 열리는 ‘과학기술공동위원회’를 통해 관련 논의 사항을 협의하였고, 교류활동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보장하기 위해 ‘과학기술장관회담’을 수차례에 걸쳐 진행하였다.

참고자료

과학기술부,《한·러 과학기술협력재단 설립 타당성 조사사업》, 2005

김효석의원실,《(최근 러시아의 동향과) 한·러 과학기술 협력방안》, 2001

과학기술처,《과학기술 30년사》, 1997

과학기술처/과학기술부,《과학기술연감》, 각 연도

집필자
문만용(서울대학교 강사, 과학사)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