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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우장춘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발생원인

우장춘(禹長春, Woo Chang Choon) 1898.4.8 ~ 1959.8.10

우장춘은 ‘종의 합성’ 이론을 배추과 작물에서 실험적으로 입증하여 유전육종학의 학문적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했으며, 당시의 학문적 성과에 기초해서 농업육종연구를 활발히 추진하여 우리나라 채소종자의 생산과 자급체계를 세우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하여 정부는 1959년 문화부문의 업적이 탁월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권위의 상인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수여했다. 우장춘은 과학기술자로 이 달의 문화인물로 가장 먼저 선정되었으며, 2003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이 설치될 때 첫 번째 헌정자 14명 한 명으로 선정됨으로써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인물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내용

가. 기본정보
우장춘은 일본으로 망명한 한국인 아버지(우범선)와 일본인 어머니(사카이 나카) 사이에서 1898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극심한 가난과 주위의 차별을 받으며 성장한 그는 1916년 일본 히로시마현립 구레(吳)중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의 관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쿄제국대학 농학분야의 실과에 진학했다. 농학실과는 대학이 아닌 전문학교 수준으로, 학업을 마치고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 기수(技手)로 취업한 우장춘은 낮은 학력과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만년 기수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는 연구활동에 매진하여 1936년 도쿄제국대학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한국인으로서는 첫 번째 농학박사였다. 1937년 일본 다키이종묘회사 초대 연구농장장으로 직장을 옮긴 우장춘은 겹꽃 페튜니아 개발을 비롯한 원예육종연구를 수행했다. 우장춘은 해방 후 국내의 초청 움직임에 힘입어 1950년 가족을 일본에 두고 홀로 귀국했으며, 한국 정부는 그를 중앙원예기술원의 책임자로 임명했다. 우장춘은 이곳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0여 년간 근무하면서 당시 시급한 과제였던 우량 채소종자의 개발 및 생산체계를 구축했으며, 원예육종학 분야의 후학들을 길러냈다.


나. 주요 공적 1: 종합 합성 이론의 입증
우장춘은 1935년 발표한 논문에서 배추(염색체수 n=10)와 양배추(n=9)의 교잡을 통해 이미 존재하는 유채(n=19)를 실험적으로 만들어내고 그 과정을 유전학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종간잡종과 종의 합성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음을 밝혔다. 이는 실험을 통해 현존하는 식물을 실제로 합성한 최초의 예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연구는 유전학적으로는 종들의 염색체 구성과 상호 관계를 구체적으로 규명했다는 점에서, 진화학에서는 종의 진화가 종들의 교잡으로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육종학적으로는 종의 합성 이론에 근거해서 종자 육종과 개량이 가능함을 밝혔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다. 주요 공적 2: 채소 종자의 자급체계 구축
해방 후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들여오던 각종 종자의 반입 중단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특히 김치 등을 만드는 채소류는 가장 필수적인 부분으로 국민들의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였다. 한국에 온 우장춘은 자신이 개발했거나 일본에서 구해온 우수한 종자를 바탕으로 학문적 이론에 근거한 체계적인 육종연구를 수행하여 짧은 시간에 우수한 종자의 확보와 개량을 이룰 수 있었다. 그 덕분에 1950년대 한국은 채소와 일부 다른 작물에서 그동안 다른 국가에 전적으로 의존해 오던 상황에서 탈피해 우량종자의 확보와 자급을 달성하게 되었다.


라. 주요 공적 3: 원예육종학 전문가 양성
우장춘의 지도아래 원예시험장에서 활동했던 후학들은 40명 정도에 달했으며, 그들은 우장춘으로부터 최신의 유전육종과 종자개량에 대한 지도를 받으며 학문적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그리고 우장춘은 종자개량 및 육종연구를 담당할 원예시험장(현재 원예연구소)의 창설과 정착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가 이끈 연구소는 꾸준히 성장하여 원예연구소로 발전하여 한국 원예연구의 대표적인 연구기관으로 발돋움했으며, 연구개량된 종자를 대량으로 생산․보급하기 위해 1953년 한국농업과학협회가 창설되어 활동을 벌였는데, 이들 기관은 한국 원예육종 발전의 중요한 제도적 기반으로 작용했다.

참고자료

한국과학문화재단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헌정대상자에 관한 인물 및 자료 조사연구》 2003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홈페이지 (http://www.kast.or.kr/hall/)

김근배 〈우장춘의 한국 귀환과 과학연구〉《한국과학사학회지》26-2, 2004

집필자
문만용(서울대학교 강사, 과학사)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14. 0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