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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금융

자본시장 국제화장기계획 발표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자본시장 국제화의 장기계획〉(1981.1.14)

배경

대외개방은 한국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의 주요조건이고 대외개방 중에서 무역자유화와 외환자유화가 어느 정도 진척되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자본자유화를 시도할 단계에 이르렀고, 외채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외자조달을 다양화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하여 정부는 자본시장 개방을 점진적으로 추진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자본시장의 규모가 확대되어야 기업의 직접금융 비율을 높일 수 있고, 국내증권산업을 육성할 수가 있기 때문에 자본거래의 자유화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특히 당시 국제수지 악화로 증가하는 외채의 상환은 물론이고 악화되는 차관의 차입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증권시장의 개방이 필요하다고 보고 정부는 1981년 1월 자본시장의 개방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천명하였던 것이다

내용

정부는 자본시장의 국제화 장기계획에 의거하여 국내자본시장의 자유화를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국내외적으로 천명하고자 하였다.


이 계획에 의하면, 1단계는 1981년부터 1984년까지 증권기관의 수용태세 정비단계로 외국증권회사의 국내진출을 상호주의 원칙하에 허용하고 외국인의 간접적 증권취득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는 것이다. 제2단계는 1987년까지로 외국인의 직접 증권취득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로 하였다. 제3단계는 1988년 이후로 외국인의 증권투자 자유화 폭을 확대하여 자본유입 면에서 완전자유화를 실현시키고 국내기업의 해외증권 발행도 허용하기로 하였다. 제4단계인 1990년대에는 내외국인의 자본거래의 완전자유화 및 증권업 영업도 완전히 허용하기로 하였다.


우리나라의 증권시장은 규모가 작고 제도적으로 미비되어 있기 때문에 개방에 앞서 정비하는 기간을 설정한 것이 제1단계이다. 이 기간 동안 외국투자자에게 간접적인 증권투자를 허용하는 외국인 전용 수익증권의 발행이 처음으로 허용되었다. 1981년 한국투신이 1,500만달러의 수익증권(KIT), 대한투신이 1,500만달러 상당의 수익증권(KT)를 발행하였다. 일본의 노무라증권, 야마이치증권, 다이와증권, 닛코증권 등이 1981년부터 1983년까지 서울사무소를 개소하였고, 우리나라의 대신증권과 대우증권은 일본 도쿄에, 동서증권은 런던에 해외사무소를 개소하였다. 1985년에는 대한투신, 국민투신, 한국투신이 KGT, ST라는 이름으로 3,000만달러씩을 발행하였다. 1984년에는 6,000만달러 규모의 코리아펀드(Korea Fund)가 설립되었다. 이 펀드는 미국의 투자회사법에 근거하여 설립된 미국의 투자신탁으로 한국에서 증권투자를 통해 얻은 운용수익을 주주에게 배당하는 회사형 투자신탁(Mutual Fund)이다. 이 펀드는 뉴욕거래소에 상장되어 거래되었다.


국내기업에 의한 외화표시 채권의 발행은 자본국제화 3단계에서 허용될 예정이었지만 국제수지 적자와 외자도입의 필요성 때문에 앞당겨 추진되었다. 삼성전자가 1985년 유로본드시장에서 2,000만달러의 전환사채를 발행하였던 것이 국내기업이 국제금융시장에서 직접 증권을 발행한 최초의 사례가 된다. 1986년에는 대우중공업이 4천만달러, 유공이 2천만달러, 1987년 금성사가 3천만달러 전환사채 발행에 성공하였다.

참고자료

증권거래소,《한국증권시장의 국제화》, 1996
韓國證券業協會,《韓國證券業協會50年史》, 2004
이영훈·박기주·이명휘·최상오,《한국의 유가증권 100년사》증권예탁결제원, 2005

집필자
배영목(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