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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금융

증권파동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발생원인

증권거래소가 주식회사제로 전환됨에 따라 일부 증권업자가 대한증권거래소주식(약칭 대증주)을 매점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법이 통과되기 직전에 1961년 12월 26일 대증주와 한전주가 폭등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1962년에 접어들어 대증주, 한국증권금융주식, 한국전력주 세 종목에 거래가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대증주와 한전주가 폭등하는 현상이 나타나 거래소는 증거금 제도를 도입하고 가격상한을 정하는 조치를 취하였지만 상승세가 멈추지지 않았다. 당시 일흥증권과 통일증권이 농협으로부터 한전주를 높은 가격으로 매각하기 위해 실물거래는 물론 청산거래로 한전주를 매입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통해 막대한 차액을 누렸다. 그리고 증권거래소 증자설에 자극을 받아 한전주 매매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누린 증권업자들이 대증주 매입에 본격적으로 나셨다. 이들의 대증주 점유율은 점차 높아지고 대증주의 가격이 상승하고 거래액도 급증하였다.


당시 증권거래소 대주주는 주식시장의 과열을 수습하기보다는 주가상승에 따른 이익을 향유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즉 증권거래소는 주식회사 조직으로서 프리미엄을 차지하는 증자를 시도함으로써 대증주의 폭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들은 대증주의 상장폐지까지 검토하겠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주주 반발을 이유로 무산시키는 등 주식시장 과열을 수습하기보다는 주식의 매집을 통해 폭리를 취하자고 했기 때문에 사태는 더 악화되었다.

내용

1962년에 접어들어 주식시장이 활황에 접어들어 1962년 2월의 거래액이 85.4억환이었지만, 1962년 4월에는 1,184,5억환이었다. 증권업자는 보통거래에서 이연료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결제를 연기할 수 있지만, 매도자가 매매성립 다음 날에 주식을 가지고 오면 매수자가 결제를 하지 않더라도 거래소가 이를 대신해서 결제해 주었다. 거래소는 거래량의 폭증에 따라 결제자금을 늘리지 않으면 안되었고 이것을 증자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그래서 거래소는 신주를 발행하여 구주주, 종업원에 배당하고 그 나머지를 액면가 이상으로 팔고자 하였다. 그 결과 구주의 가격이 1962년 3월 9.2환에서 4월에 42.5환으로 폭등하였다.


당시에 주식시장이 과열되고 있었지만 주식회사 대증주 가격 폭등으로 결제대금이 늘어나서 거래소의 대주주이자 대증주 매수그룹이었던 통일증권, 일흥증권, 동명증권은 물론이고 다른 증권회사들도 결제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고 시중은행으로부터 차입을 통해 결제 불이행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하였다. 그러나 5월에 접어들어 계속 거래액이 증가하여 4월에 비해 2배 가량 늘어나 2520억환에 이르렀고, 결제대금은 850억환이었는데, 이 중에서 246억환이 결제되지 못하는 결제불이행 상태에 빠져 증권거래소는 6월 1일부터 휴장에 들어갔다.


청산거래의 수도결제에 책임이 있는 증권거래소는 결제를 재개하기 위해 재무부장관에게 수도결제대금을 긴급히 융자해줄 것을 건의하였다. 정부가 280억환을 지원하면서 5월 말의 수도결제는 6월 4일에 종결시켰지만, 여전히 6월말 결제액 390억환이 문제이었다. 이 결제대금은 증권업자의 협의와 정부의 지시에 따라 해옥(解玉: 불시에 일어난 시세의 급변으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 매매쌍방이 일정한 값을 정하여 매매를 해제하는 것)이 결정되어 5월의 증권파동은 일단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 사건은 정부와 시중은행의 구제금융과 해옥이라는 비상조치로 수습되었지만 거래소 조직, 청산거래, 증권금융 등 제도상의 미비점을 드러내었고, 주식시장의 발전에도 오랫동안 역효과를 미쳤다. 첫째, 이 파동은 증권거래소와 주식시장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여 장기간 증권투자자의 이탈을 초래하였다. 둘째, 정부가 증권시장을 통한 내자동원의 길이 막힘에 따라 은행의 정책금융기관화 동기를 부여하였고, 나아가 정부가 외자동원에 주력하는 계기로도 작용하였다. 셋째, 주식회사 조직이 실패함에 따라 정부는 증권거래소를 공영제로 전환함으로써 거래소의 자생적 발전이 더욱 지연되었던 것이다.

참고자료

大韓證券業協會,《證協三十年史》, 1983
韓國證券業協會,《韓國證券業協會50年史》, 2004
이영훈·박기주·이명휘·최상오,《한국의 유가증권 100년사》증권예탁결제원, 2005

집필자
배영목(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