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교육헌장」 선포 배경은 1968년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 제시된 ‘제2경제’ 개념에서 시작된다. 1968년 6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교육의 장기적인 방향 정립과 민족 주체성의 확립을 위한 교육장전의 제정을 구체적으로 검토, 보고할 것을 당시 문교부 장관 권오병에게 지시하였다. 이에 문교부는 각계 대표를 망라하는 헌장 기초위원 26명, 심사위원 48명으로 국민교육헌장 제정 작업에 착수하였다. 8차에 걸친 초안 심의회를 거쳐 총 393자의 「국민교육헌장」이 작성되고, 1968년 11월 26일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으며, 이어 12월 5일 박정희대통령에 의해 선포되었다.
「국민교육헌장」은 민족주체성에 기초한 국민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한국 교육의 핵심 요소를 교육의 기본 이념 속에 강조하고 있다. 「국민교육헌장」은 「교육법」을 대신하는 위치를 점하거나 그 개정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며, 제도상으로는 「교육법」의 홍익인간 아래 하위 교육이념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교육헌장 선포 이후, 문교부는 그 실현을 위한 노력을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전개하였다. 학교 교육을 통한 구현 방안을 수립하고 교육헌장을 기본이념으로 하는 교육과정 재편을 추진하는 한편, ‘국민교육헌장독본’ 265만부를 발간하여 각급 학교와 기관에 배부하였고, 초등학생을 위한 ‘헌장그림책’도 130만 부를 발간 배포하였다. 문교부는 10월 유신 이후 학생용 및 교사용 도서를 임시로 발간하여 유신 정신과 그 정치적·사회적 구상을 밝혔으며 1972년 12월 『한국 민주주의』라는 책자를 발간하였다. 「국민교육헌장」은 국가 및 학교교육의 각종 공식 집회에서 ‘봉독’되거나 학생들에게 암송시키고, 국정 교과서에 공식적으로 게재되는 방식으로 교육 현장에 침투되었다.
막강한 정부의 행정력을 기반으로 범국가적 차원에서 강조되었던 「국민교육헌장」은 곧이어 공포된 유신헌법의 기초가 되었다. 교육헌장은 유신 정부에 의해 ‘국적 있는 교육’, ‘새마을 교육’ 등의 새로운 교육 슬로건을 정당화하는 기반으로 활용되었다. 1970년 11월부터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면서 교육운동으로 ‘새마을 교육’이 함께 추진되었는데, ‘새마을 교육’은 「국민교육헌장」의 이념 아래 학교교육을 통하여 학생과 향토민에게 새마을 정신을 함양시킴으로써 향토 개발과 국가 발전에 공헌하는 실천적 인간의 육성을 목적으로 하였다.
1980년대에도 국민정신교육이 강화되었다. 특히 각급 학교의 도덕, 국민윤리, 국사, 사회과 교과서 개편 작업이 진행되었고, ‘문교행정’, ‘국민윤리교육소식’, ‘국기·국가·국가원수에 대한 예절’, ‘기본생활습관지도자료’, ‘국어순화자료’ 등의 교육 자료가 제작 보급되었고, 교육공무원에 대한 이념교육 등이 강화되었다. 이와 같은 「국민교육헌장」은 문민정부에 의해 여론조사와 연구를 거쳐 1994년 사실상 폐지되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공식적인 폐지 절차를 취하지는 않았다.
文敎40年史編纂委員會, 『문교40년사』, 문교부, 1988
교육50년사편찬위원회, 『(대한민국 50년)교육 50년사 : 1948-1998』, 교육부, 1998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편, 『교육학대백과사전』, 하우동설, 1998
교육과학기술부(http://www.mes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