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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역사교과서 문제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발생배경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특히 고이즈미 수상 치하에서 중요한 외교문제로 대두되면서 그 결과 한·일, 일·중관계에 상당한 부담이 되어왔다. 고이즈미 수상의 시대는 일본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내셔널리즘적 발상이 국민적인 정서와 결합되면서 일본 정치의 중요부분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고이즈미 수상은 경제 구조 개혁을 중심으로 한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군사 안보를 중심으로 한 측면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면서 그 지지가 유지되고 있다. 이는 일본 정치의 흐름에서 본다면 탈냉전 이후 일본 경제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기를 원하면서 일본의 영향력 확대를 주장하는 세력이 정치권에서 점점 확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후소샤의 ‘자유주의 사관’을 중심으로 한 우익세력들의 역사 재평가와 교과서 개편 운동은 1950년대나 1980년대의 교과서 논쟁과 달리 일본사회 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확대되고 있다. ‘자유주의 사관’을 비판하고 있는 사람들도 인정하고 있듯이 자유주의 사관의 역사해석과 주장은 일반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와 교육현장의 교사들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익세력의 역사 재해석에 대한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배경은 일본 사회의 변화다. 1990년대에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나타난 일본 사회의 변화는 일본 국민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불안감을 가지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전과 달리 자신감의 상실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일본 사회 내에서는 일본경제의 침체에 대한 패배감의 반작용으로 강한 일본을 재건해야 한다는 내셔널리즘적인 열망이 강하게 대두되었고, 정치에 대한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본 국민의 열망과 희망은 일본의 자유화와 개혁을 유도하는 긍정적인 방향과 일본의 정체성 확립을 주장하는 우익 세력의 새로운 역사해석에 동조하는 부정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다.

내용

2005년에 개정된 후소샤판 역사교과서는 2001년판보다 고대사 부분의 내용이 축소되었으나 근현대사 부분은 왜곡된 부분을 보강하고 분량을 늘렸다. 이전에 비해 서술의 변화라든가 관점의 수정은 보이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분량의 증가에 비례하여 왜곡은 심화되었고 제국주의·군국주의 일본의 정당화는 더욱 강화되었다. 또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주장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후소샤 교과서의 역사 왜곡은 한결같다.


2001년판 보다 개악된 부분은 상당수에 이른다. 임진왜란시 조선이 입은 피해부분을 삭제시키고 임진왜란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에 군대를 보낸 것으로 희석시켰다. 강제동원과 황민화 정책 관련 기술을 약화(‘식민지에 의한 고통과 희생 강요’를 삭제, 창씨개명의 강제성 희석, ‘황민화 정책’이란 표현 삭제, 강제징용 사실을 전쟁말기 징용·징병제 확대 적용으로 왜곡 등)시켰을 뿐만 아니라 2001년 자체 수정시 삭제되었던 ‘조선인중 일부 병합 수용’과 ‘중국의 복속국’이라는 표현을 다시 썼다. 그리고 ‘조선의 근대화를 도운 일본’이라는 제하에 별도의 칼럼을 신설하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번 교과서 문제의 특징은 공민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포함시킨 점이다.

역사적의의

참고자료

진창수,〈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한국의 대응〉《정세와 정책》(통권 107호), 2005.5
호하종문,〈일본 우익 교과서 채택 움직임과 한일관계〉《정세와 정책》(통권 110호), 2005.8
이숙종,《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와 우리의 대응 방향》성남:세종연구소, 2001
이원덕일본,〈‘역사교과서 파동’과 한일관계〉《극동문제》(통권 272호), 2001.10

집필자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12. 0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