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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북한핵실험(2006.10.9)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발생배경

2005년 9월 19일의 〈4차 6자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기본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마련되지 못하였다. 11월 9일부터 3일간 베이징에서 개최된 〈5차 6자회담〉도 실제 해결 방안에 대한 북·미간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성과 없이 휴회되었다. 2005년 9월부터 시작된, 북한의 마카오 계좌에 대한 제제는 2006년에도 계속 되고 있었다. 7월 5일 북한은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스커드, 노동, 대포동 2호 미사일을 시험 발사 하였는데, 이는 미국을 더욱 강경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7월 24일 중국도 북한의 중국은행(Bank of China) 계좌를 동결하였다. 북한은 이러한 경색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2006년 10월 핵실험을 전격 감행하였다.


냉전시대에 북한에게는 소련이라는 든든한 우방이 존재하였고 또한 이들의 통제가 있었기 때문에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억제될 수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초 소련과 중국이 한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반면, 북한은 미국 및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지 못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심각한 외교적 고립에 직면하게 되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됨으로써 안보 공백에 직면하게 된 북한은 결국 본격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였고 제1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게 되었다. 1차 핵위기가 1994년 미북간 제네바합의에 의해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북핵 문제는 해결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특사의 방북에서 〈북한의 비밀 농축우라늄 계획〉이 드러나면서 2차 핵위기가 시작되었다.


북한 외무성은 2006년 10월 3일 성명을 통해 미국의 반북 고립 압살 정책을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으며, 시기는 밝히지 않았지만 앞으로 안전성이 철저히 담보된 핵실험을 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또한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북한의 원칙적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며 미국이 우려하는 핵무기 또는 핵물자의 이전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한국을 포함한 주변 각국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으며, 특히 미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시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살게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하였다.
그동안 북한은 핵보유에 필요한 3대 요소, 즉 기술, 물질, 정치적 의지 중 처음 두 가지는 이미 구비했고, 정치적 결단만을 남긴 상태라고 여겨졌었다. 핵실험은 통상 핵보유로 가는 최종단계로 간주되며, 북한 지도부의 정치적 결단만 있으면 핵보유 그림이 완성된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핵실험은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가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내용

주변국들의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핵실험을 실시하였다. 북한의 핵실험은 주변국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혼란을 야기하였다. 미국과 프랑스는 북한 핵실험의 진위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였고, 그 위치와 규모 역시 주변국들의 자료 차이로 인해 판가름하기 쉽지 않았으나, 결국 10월 17일 미국은 핵실험을 한 장소로 추정되는 한 풍계리 인근의 공기 샘플을 채취하여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했음을 공식 확인하였고, 그 규모는 일반적인 핵실험 규모에 훨씬 못미치는 1킬로톤 정도로 추정되었다. 미국은 북한의 핵 실험 이전의 경고와 달리 즉각적이고 강력한 제제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지만, 경제제제와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의 강화에 노력하였다. 주변국들이 우려하였던 북한의 2차 핵실험은 2006년 11월 현재 일어나지 않았다.


북한의 핵실험 선언 후 한국 정부는 즉각 북한의 핵보유를 용납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처할 것을 언명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10월 9일 〈한·일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핵실험을‘불장난’이라고 말하면서 유엔 및 미·중·일 등 관련 당사국과 긴밀히 협의해 ‘조율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채택된 15일에도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유엔안보리가 대북한 제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을 환영하고 지지한다며 안보리 결의를 존중하고 이를 성실히 이행해 나갈 것을 확인한다고 했다.

참고자료

정성장,〈북한 핵실험 : 북한의 의도와 입장〉《정세와 정책》, 2006년 특집호 (통권 125호)

집필자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12. 0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