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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김영삼 - 장쩌민 한중 정상회담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배경

1992년 한중 국교정상화로 양국 정상회담 개최가 가능해졌고, 김영삼 대통령과 장쩌민(江澤民) 주석은 총 6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중 두 번의 정상회담은 정상들이 상대국을 방문하여 개최되었고(1994. 3. 북경, 1995. 11. 서울), 나머지 4번의 정상회담은 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마련된 정상회담이었다(1993.11. 시애틀, 1994.11. 자카르타, 1996.11. 마닐라, 1997.11. 밴쿠버).

내용

한중 정상회의 의제는 주로 북한 핵문제 해법과 경제협력에 관한 것이었고, 시애틀 정상회의, 서울 정상회의, 북경 정상회의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었다. 시애틀 정상회의에서는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으며, 이 자리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중국에게 북한을 설득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장 주석은 중국은 이미 북한 설득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고 더욱 노력할 것임을 강조했다.

북경 정상회의(1994)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활용하여 북한으로 하여금 4자회담에 복귀하도록 압력을 행사해 달라는 부탁을 했고, 강택민 주석은 적극 노력하겠다고 대답하면서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확고한 신념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정상회담에서는 자동차, 전자교환기, 항공산업 분야 등 양국의 경제협력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었다

중국의 국가원수로는 처음 서울을 방문해서 성사된 서울 정상회담(1995)’에서는 대화를 통한 북핵문제 해결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장쩌민 주석은 중국은 한반도 자주평화통일을 지지하며, 유관 각국이 한반도 정세를 완화하고 상호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영삼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에토 다카미 당시 일본 총무상의 식민지 시절 좋은 일도 있었다는 망언에 대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기어이 고쳐놓겠다며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결과적으로 김영삼 대통령은 장쩌민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호혜적이고 상호보완적인 한중관계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자료

각종 일간지 및 TV 뉴스

외교부, 외교백서, 1994~1998

집필자
이대우(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최초 주제 집필
2017. 11. 22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