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

분야별 검색

  • Home
  • 기록물 열람
  • 통합검색
  • 분야별 검색

외교

요르단 후세인 국왕 방한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1983년 9월 10일부터 13일까지 후세인 요르단 국왕이 중동 국가의 정상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였다.

배경

1980년대 들어 중동 건설 붐은 퇴조하기 시작하였지만 제5공화국은 평화통일 기반조성과 자원 확보 측면에서 대 아랍권 외교를 한층 강화하였다. 이에 따라 후세인 요르단 국왕의 방한을 실현시켰다.

내용

1983년 9월 10일부터 13일까지 후세인 요르단 국왕이 중동 국가의 정상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였다. 


한국과 중동지역의 관계는 1970년대의 중동건설 붐을 타고 급격히 성장하였다. 그로 인한 이 지역에서의 한국 국력의 신장은 괄목한 것이었다. 대 아랍권 외교의 강화는 다른 측면에서 대 이스라엘 외교의 후퇴를 수반하였지만 한국의 제3세계 외교역량의 성장을 의미한다.

 
1980년대 들어 중동 건설 붐은 퇴조하기 시작하였지만 제5공화국은 평화통일 기반조성과 자원 확보 측면에서 대 아랍권 외교를 한층 강화하였다. 이에 따라 후세인 요르단 국왕이 1983년에, 1984년에는 칼리파 카타르 국왕의 방한을 실현시켰다. 


전두환 대통령과 후세인 요르단 국왕은 9월 10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을 통해서 양국 정상은 KAL기에 대한 소련의 만행을 강력히 규탄하고, 앞으로 양 국이 국제문제 해결에 공동으로 대처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후세인 국왕이 취한 입장은, 소련의 KAL기 격추 만행을 규탄하는 유엔 안보리 표결에 앞선 것으로, 한국의 안보리에서의 입장을 한층 강화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후세인 국왕의 방한 기간 중에 유엔 안보리에서는 KAL기 격추사건에 대한 대소규탄결의안 표결이 있었다. 처음에는 결의안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던 요르단이, 후세인 국왕과 전두환 대통령의 회담 이후 적극 지지 쪽으로 태도를 바꾸어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요르단은 1974년 북한과도 국교를 열고 있었다. 요르단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중립국들이 통상적으로 갖는 국제정치적 성향을 고려할 때, 요르단 국왕의 적극적인 대한 지지 입장 표명은 한국에게 고무적인 외교적인 성과로 평가받을만한 것이었다. 


양국 정상은 13일, 공동성명을 발표하여, “양국 원수는 상호 이익을 위해, 경제·과학·기술 분야에서 더 많은 협력을 추구해야 하며, 예술과 교육·스포츠 등에서도 상호 교류를 더욱 권장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한다”고 하였다.

참고자료

《실록 제5공화국(1)》《경향신문사》, 1987
《한국외교 40년》외무부, 1990

집필자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등)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