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닉슴은 이후 헨리 키신저와 함께 미국 외교노선에 일대 수술을 가하게 된다. 닉슨 행정부는 1970년대 미국의 국력과 국제질서의 세력균형에 입각한 새로운 외교노선을 수립, 실천하였다. 닉슨 대통령은 취임 이후 괌독트린을 발표하고, 아시아인에 의한 아시아 방위를 천명하였다. 괌독트린에서 미국은 (1) 동맹국에 대한 모든 안보공약을 준수하며, (1) 동맹국이 외부로부터 핵위협을 받을 경우 이들을 보호하고, (3) 핵위협 이외의 외부공격에 대하여 안보공약에 의거해 군사 및 경제원조를 제공할 것이나, 동맹국은 스스로가 자신의 방위에 대하여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71년 7월 닉슨 대통령의 중국방문이 발표되었다. 한국민은 한국전쟁시 적대국이었던 미국과 중국이 화해를 추구한다는 사실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었다. 닉슨 대통령이 자신의 중국방문 계획을 밝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박대통령은 닉슨 대통령 앞으로 서신을 보냈다. 1971년 9월 16일자 서신에서 박대통령은 닉슨의 중국방문 결정이 아시아의 긴장완화와 국제평화 건설에 기여할 것이라며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박대통령은 중국 방문 시 한국과 사전상의 없이 한국문제가 논의되어서는 안 된다며, 혹시 한국문제가 언급될 가능성에 대비하여 한미 간의 충분한 의견교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박정희의 서신을 받은 닉슨은 약 2달 후 답신을 보냈다. 이 편지에서 닉슨은 미중대화가 아시아의 긴장완화를 위한 조치이며, 그 혜택은 한국을 비롯한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누리게 될 것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닉슨은 미국이 중국과 화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한국 등 동맹국들의 이익을 간과하지 않을 것이며, 베이징에서 기본적으로 제3국에 대한 문제는 논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1972년 2월 닉슨은 모택동과 회담을 가진 후 주은래와 함께〈상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미국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임을 확인하면서, 대만 및 동남아로부터 궁극적으로 미군을 철수시킬 것을 약속하였다. 미국은 또한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대화증진을 모색하려는 한국정부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