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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러스크 미국무장관 방한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발생원인
1964년 1월 29일 딘 러스크(Dean Rusk) 미 국무부 장관이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5시간 머물면서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정부의 고위당국자들과 회담을 가졌다. 러스크 국무장관 방한의 가장 큰 목적은 한일국교정상화를 위한 회담의 조속한 타결을 촉구하는 데 있었다. 〈한·일회담〉은 1962년 12월 군사정부와 일본정부 간의 청구권에 대한 잠정적 합의가 이루어짐에 따라 일정한 진전을 보였으나, 민정이양을 둘러싼 한국 국내정치의 혼란 속에서 〈한·일회담〉은 정체되어 있었다. 1963년 12월 제3공화국 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미국의 존슨 행정부는 멈춰있던 한·일회담을 다시 움직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그 일환으로서 러스크 국무장관의 방한이 이루어졌다.
내용
박정희 대통령과 러스크 국무장관의 회담에서는 프랑스의 중국승인문제 등 “자유진영의 안전에 미칠” 국제정세와 한미간의 현안문제 전반에 걸쳐 논의되었다. 회담의 주요의제로는 한국군 및 주한미군 병력수준 문제, 경제안정 및 개발계획, 한·일국교정상화 등이 다루어졌다.


회담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의 군사 및 경제적 지원이 계속될 것이라는 미국정부의 언질을 요구하였다. 먼저 국방문제에 대해 박 대통령은 당시 유포되고 있던 주한미군 감군설와 관련하여 “감군이나 철군문제는 현재 시기적으로 적당하지 않으며 국제적 사정이나 또 우리 국내적 사정으로 볼 때 감군문제는 도저히 논의될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경제문제는 주로 미국의 대한원조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이 적어도 4∼5년간 현 수준의 경제원조를 유지해 줄 것, 그리고 미국의 군사원조이관(MAP transfer)을 2∼3년 추가 연장함으로써 한국의 경제개발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하였고 아울러 물가안정을 위한 식량지원도 요청하였다. 박 대통령은 이러한 지원이 〈한·일회담〉의 조속한 타결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한편 회담타결 이후에도 미국의 대한원조에는 변동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상과 같은 박 대통령의 요구에 대해 러스크 장관은 “감군이나 철군은 지금 말할 시기가 아니며, 내가 온 목적이 거기에 있지 않다”고 말한 후, 이 문제는 “필요하다면 시간을 두고 진지하게 한미양국이 토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한국의 경제지원계속 요청에 대해서는 한국정부가 무상원조만이 아니라 개발차관기금(DLF), 수출입은행차관, PL480 등 다양한 형태의 외자를 도입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답하였다. 마지막으로 〈한·일회담〉과 관련하여 러스크 장관은 한일국교정상화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관심을 표하며, 이러한 관심이 결코 한국지원에 대한 미국의 부담을 일본에 떠넘기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참고자료
외무부,〈러스크 미국무장관방한시의 종합 회의록, 1964년 1월 29일〉《대한민국외교문서》(분류번호 724.32US 1964, 등록번호 854), 1964
역사적 의의
회담을 마친 후 양국은 (1)「한·일회담」의 조속한 타결, (2) 한국방위를 위한 강력한 한·미양국의 유대, (3) 한국경제의 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대한원조 및 그 효율적 사용, (4)「한·미행정협정」 조속 추진 등을 골자로 하는〈한·미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집필자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