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

분야별 검색

  • Home
  • 기록물 열람
  • 통합검색
  • 분야별 검색

외교

한국군 감축안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역사적 의의

1960년대 미국의 한국군 감축안을 둘러싼 한미관계는한국전쟁 이후 한국군의 감축안이 미국의 냉전 수행전략과 맞물리면서 전개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러한 감축안이 실제로 집행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세계 전략은 또한 정책 집행을 어렵게 하는 결정적 변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1960년대의 미국의 한국군 감축안 추진이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의 본격적 개입이라는 상황에서 더 이상 집행되지 못했다는 점을 통하여 잘 나타났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한국의 군사정부의 정치적 안정성에 대한 고려 역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미국의 한국군 감축안은 한국의 군사정부에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왜냐하면 한국군의 감축은 한국의 대외 안보적 측면뿐만 아니라 대내 안보적 측면에서도 큰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대내 안보적 측면에서의 부담이란 한국군의 감축 추진이 군사정부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 군부 세력에 부담을 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은 베트남 파병 제안을 통하여 미국의 한국군 감축 추진에 대응하였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차후에 본격화되었던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통하여 한국은 미국의 한국군 감축안을 유보시킬 수 있었다. 반면 미국은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싸우는 동안 오히려 한국에 대해 더 큰 부담을 안게 되었다. 결국 1968년을 계기로 베트남에서의 종전을 결정한 미국은 이 시점에 한국에 대한 안보 부담을 감소시키기 위하여 주한 미군의 감축을 본격적으로 모색하였다. 그리고 이는 닉슨 독트린의 천명을 통하여 구체적 추진으로 집행되었다.

배경

1950년대와 60년대를 통해 한국군의 규모는 미국의 대한국 정책과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결정되었다. 그 이유는 한국군 유지를 위한 비용이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원조에 의하여 충당되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 미국은 재정적 부담을 덜기 위한 차원에서 한국군의 감축을 모색하였다. 하지만 한국의 휴전 상황과 중국군의 북한 주둔 문제 등의 대외적 안보 상황에 대한 고려로 말미암아 이러한 감축안을 추진하기가 용이하지 않았다. 더불어서 한국 내부의 불안정적인 사회 상황이라는 대내적 안보 상황 역시 미국의 한국군 감축안의 집행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따라서 1950년대의 미국의 한국군 감축 정책은 2개 사단을 감축하는 선에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1950년대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미국 내에서 취약한 동맹국에 대한 새로운 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비판적 시각을 통하여 미국은 공산주의에 대한 보다 적절한 봉쇄를 위하여서는 취약한 동맹국의 경제개발을 통하여 자본주의적 경제체제가 공산주의보다 더 우월하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새로운 정책 기조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정책 기조는 곧바로 케네디 행정부 내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로스토우(Rostow)를 중심으로 취약한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정책이 추진되었다.

내용

1960년대의 미국의 한국군 감축안은 이러한 새로운 정책적 기조 하에서 고려되었다. 1950년대의 군축 논의가 기본적으로 미국의 재정균형을 목적으로 진행되었던 반면 1960년대 초의 한국군 군축 문제는 경제개발계획과 새로운 군사정부에 대한 고려를 기본으로 하였다. 따라서 1960년대 초의 한국군 감축안을 모색함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의 경제적 진보에 있어서 군축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와 군축이 한국의 군사정부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를 핵심적으로 고려하였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군의 감축이 한국의 경제적 진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반면 한국군의 감축이 한국의 군사 정부의 안정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를 문제는 좀 더 복잡한 성격을 지녔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군의 감축이5·16 이후 등장한 새로운 군사 정부 및 박정희 정부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를 중요한 정책적 고려 사항이 되었다. 


한국군의 감축을 위한 한미 간의 논의는 1962년의 통화 개혁 및 경제개발계획을 둘러싼 갈등 및 1963년의 민정이양을 둘러싼 갈등으로 인하여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민정이양 문제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된 직후인 1963년 후반부 시점에서 미국은 자체적으로 한국군의 감축 계획을 상당히 구체적 수준까지 입안하였다. 물론 이러한 한국군 감축 계획은 주한 미군의 감축과도 연계되면서 고려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한국군 감축안에 정치적 부담을 가진 한국의 군사 정부는 미국에 베트남에 대한 한국군의 파병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차후에 본격화된 미국의 한국군 월남 파병 요청과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이 추진된 상황에서 더 이상 한국군의 감축을 논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면 1960년 초반에 미국이 고려한 한국군 감축안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1963년 가을 케네디 대통령의 지시를 바탕으로 국방부 차관보인 질패트릭과 국무부 차관보인 존슨의 주도하에 작성된 한국군 감축에 대한 보고서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이 감축안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지상군의 규모를 535,000명에서 485,000명으로 감축하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감축을 단계적으로 실시하면서 감축의 완료 시점을 1965년 9월로 설정하였다. 물론 미국은 이러한 군사력의 감축이 북한에 대한 억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하여서는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핵 억지력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한편 이러한 한국군 감축안을 추진함에 있어서 미국은 자신의 감축 정책이 한국 방위에 대한 공약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한국에 분명히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또한 유엔군의 지휘 구조를 자신이 통제함으로써 한국군을 통제해야 할 것이라는 점 또한 분명히 하였다. 또 한국군의 조직과 배치가 미국의 전략과 계획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고안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 또한 분명히 하였다.

참고자료

역사스페셜,〈월남파병, 박정희의 승부수였다〉KBS 1TV, 2003.5.24 방송
박태균,〈1950·60년대 미국의 한국군 감축론과 한국정부의 대응〉《국제·지역연구》9집 3호, 2000
신욱희·김영호,〈전환기의 동맹: 데탕트 시기의 한미 안보관계〉《한국정치사 기획학술회의 발표문》,2000.4.7
Cha Victor,《Alignment Despite Antagonism: The United States-Korea-Japan Security》Stanford University Press, 1999
Ma Sang-Yoon,〈Dealing with Authoritarianism: U.S. Policy toward South Korean Governments 1960∼1968〉 Unpublished D. Phil Dissertation, University of Oxford, 2001

집필자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