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김일성은 1950년 5월 13일 모택동에게 전쟁협조를 요청했으나, 모택동의 반응은 신중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초부터 모택동은 참전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세가 불리해지자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소련군 파병을 요청했으나, 당시 소련군 개입을 주저했던 스탈린은 모택동에게 전문을 보내(1950. 10. 1) 중공군 5~6개 사단을 한국전에 즉각적으로 투입할 것을 요청했다. 모택동은 중공군의 장비 부족과 미중전쟁으로의 확대를 이유로 참전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으나, 스탈린이 미중전쟁이 발발하면 「중소방위조약」을 근거로 중공을 지원할 것을 약속함에 따라 참전을 결정하였다. 모택동은 팽덕회를 중국의용군 사령관으로 임명하고(1950.10.5.), 중공군 9개 사단을 한국전쟁에 투입하기로 결정했으며(1950.10.7.), 약 26만 명의 중공군은 미국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평양-원산 이북 지역에 투입하여 유엔군에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이후 유엔군은 청천강 이남 지역으로 철수를 시작했으며, 중공군이 평양을 점령하였다(1950.12.5).
한국전쟁 전선은 38선 근처에서 고착화되기 시작했고, 중국은 휴전협정 당사국으로 휴전협상에 참여했다. 그리고, 1953년 7월 23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