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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민족반공연맹 결성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1953년 11월 발표된 이승만 대통령과 장개석 총통의 정상회담 공동성명〉

배경

이승만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계속하여 태평양동맹 구상을 미국과 지역 국가들에게 제의하고 있었지만, 대만의 국민당 정부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호응이 없었다. 이에 이승만 정부는 한국전쟁이 끝나자 대만의 국민당 정부와 함께 반공통일전선 구상을 적극 추진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성격상 종래의 지역 국가들을 결속시키려는 동맹구상에다가 민간단체들에 의한 기구형성 구상을 가미한 것이었다. 이러한 반공통일전선 구상은 1953년 11월 대만에서 개최된 이승만·장개석 정상회담에서 합의되었으며, 1954년 6월 15일에는 경남 진해에서 민간 반공기구로써‘아시아민족반공연맹’을 결성하게 되었다.

내용

아시아민족반공연맹은 공산주의 및 전체주의와의 투쟁, 인간의 자유와 사회정의, 민족자결 등 인간의 여러 권리의 확보·신장을 위한 활동 등을 설립목적으로 하였다. 그리고 임무 및 활동으로 공산주의 침략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 방법의 강구, 자유국가 국민의 반공투쟁 지원, 공산치하에 있는 국민의 해방운동 지원, 대(對)공산 정치 심리전 방안의 연구개발, 자유국가간의 문화·정보교류와 상호이해 증진, 반공지도자 양성 등을 내세웠다.


민족반공연맹의 결성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한국외교의 폭을 동남아지역에까지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즉, 연맹 결성을 위한 외교적 노력 가운데 필리핀에 상주공관을 개설하게 되었고, 기타 동남아국가에도 사절단을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이는 한국 민간외교단체의 확대를 의미하고 있었다. 민족반공연맹이 결성될 때까지 한국의 민간외교단체로는 1947년 11월에 세계적인 민간단체 ‘유엔세계연맹’의 산하기구로 발족한 ‘유엔대한협회’(1949년 9월에 ‘유엔한국협회’로 개칭)와, 1954년 1월에 발족한 ‘한국유네스코위원회’뿐이었다. 양 단체가 유엔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제기구의 시초였다는 점에 비추어, 민족반공연맹은 한국의 민간외교사에 있어서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제기구의 시초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반공통일을 주장하던 이승만의 독자적인 지역동맹체 구상은 미국 뿐 아니라 필리핀과 같은 국가로부터 외면당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것은 결과적으로 그가 희망하였던 민간기구인 민족반공연맹의 정부간 기구로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한 원인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민족반공연맹의 결성과 차후 유지결과가 한국에 가시적인 외교적 성과를 안겨 주지는 못했지만, 태평양동맹 구상을 향한 이승만 정부의 노력은 약소 신생국 정부로서 추진한 대외적 취약성 극복을 위한 외교적인 시도 그 자체로서 평가받을 수 있다.


이후 아시아민족반공연맹 한국지부는 1964년 1월 한국반공연맹으로 개편되었고, 1989년에는 한국자유총연맹으로 다시 출범하였다.

참고자료

최영호, 이승만 정부의 태평양동맹 구상과 아시아민족반공연맹 결성, 국제정치논총392, 1999

외무부, 한국외교 30, 1979

집필자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교수 등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