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하여 전쟁이 발발했다는 사실을 전쟁 발발 5시간 후인 6월 25일 오전 9시 30분에 인지하고 국무부에 즉시 보고하였다. 미국 국무부는 유엔 사무총장 리(Trygve Lie)에게 한국전쟁 발발 사실을 통고하고, 안보리 소집을 요청했다. 미국 시간으로 1950년 6월 26일 안보리 회의가 개최되었다. 한편 유엔 한국위원회(UNCOK)도 북한의 군사행동중지를 요구하면서 유엔사무총장에게 전쟁발발 사실을 보고했다.
유엔안보리 미국 대표 그로스(Ernest A. Gross)는 안보리 「결의안 82호」 초안을 발표하면서 한국대표의 참석을 제안했고, 안보리는 장면 주미대사에게 한국 입장을 주장할 기회를 부여했다.
이후 유엔안보리는 미국주도로 작성된 결의안을 약간 수정한 최종 결의안으로 찬성 9표, 반대 0표, 기권 1표(유고)로 가결시켰다. 당시 안보리는 5개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11개국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당시 소련 대표는 1950년 1월부터 중화민국 대신 중공(중화인민공화국)이 유엔 대표권을 가져야 함을 주장하면서 항의 표시로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