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 유엔이 개입하여 16개 회원국으로 유엔군을 파견함에 따라 한국 안보문제에 있어서 국제기구, 특히 유엔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한국군의 작전 지휘권이 유엔사령부로 이양되어, 유엔 사령부 중심으로 전쟁이 치뤄졌고,「정전협정」이 체결됨으로써 한국은 안보문제를 유엔 사령부와 실질적으로 유엔사령부를 지휘한 미국에게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건국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국제기구인 유엔은 6․25전쟁 이후 한국의 안보와 국방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유엔은
6․25전쟁이 발발과 함께 유엔은 역사상 처음으로 유엔군사령부를 구성하여 전쟁에 참전하였다.
이처럼 유엔군사령부는 6․25전쟁 이후에도 국군에 대해 작전통제권을 행사함으로써 6․25전쟁 당시 형성된 유엔군과 한국군의 연합방위체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6․25전쟁 당시 유엔의 역할은 존망의 위기에 처한 한국을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구해냈을 뿐만 아니라 유엔군과 한국군의 긴밀한 연합방위체제의 형성으로 한국군의 군사력과 군사전략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유엔군 사령관은 참전 16개국을 대표하여 휴전협정에 서명했고 한반도 정전체제를 감시하고 유지하는 책임을 떠맡았다. 휴전 이후 미국인 유엔군 사령관은 주한미군 사령관을 겸임함으로써 한국 안보와 국방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1953년 유엔 총회 결의에 의해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개최된 제네바회담이 결렬됨으로써 평화협정은 체결되지 못했고 불안정한 정전상태는 한반도에서 지속되었다. 미국은 자동개입조항이 없는 한미방위조약을 보완하기 위해 일종의 인계철선(trip wire)으로 휴전선 상에 미군 2개 보병사단을 배치했다. 1978년 한미연합사가 창설될 때까지 주한미군은 유엔사령관의 지휘 하에 있었다. 유엔군사령부는 한반도 평화 유지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50년 10월 중국이 전쟁에 개입했을 때 유엔 총회는 중국을 침략자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중국과 유엔 사이에 조성된 갈등관계는 그 이후 중국의 유엔 가입과 함께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되었고 한국의 안보에도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외교통상부,《한국외교 40년》, 1990
외교통상부,《한국외교 50년, 1948-1998》, 1999
김정원,《한국외교발전론》집문당,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