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조정실과 그 소속기관의 직제」
오랜 이란 - 이라크 전쟁이 끝나자 이라크는 국내의 정치적 불안을 잠재우고 민심을 수습할 필요가 있었으며 이를 위해 이라크는 역사적으로 쿠웨이트가 이라크의 영토였다는 명분 아래 1990년 8월 2일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쿠웨이트는 국제 사회에 도움을 청하게 된다. 또한 이라크와 쿠웨이트 모두 세계 굴지의 산유국이라는 점에서 국제 유가 등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장 또한 적지 않았다. 따라서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1991년 1월 15일까지 철군하지 않을 경우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을 승인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33개국의 다국적군 68만 명이 페르시아만에 집결하면서 전쟁에 대한 긴장이 고조되었다.
유엔이 결의한 철수시한인 1월 15일이 다가옴에 따라 한국 정부는 각 부처별로 교민철수(외무부), 에너지 대책(동력자원부), 조사단 파견(국방부), 생필품 가격점검(경제기획원) 등 전쟁발발에 대비하였고, 총리실(행정조정실)은 각 부처의 대비태세를 총괄하고 공무원에 대해 비상근무령을 발령하는 등 전쟁에 대비한 만반의 조치를 취하였다. 철수시한 이틀 후인 17일 다국적군의 폭격으로 결국 걸프전이 발발하였다. 이에 따라행정조정실 제1행정조정관(이흥주)을 실장으로 하여 각 부처를 총괄하는 걸프사태 종합상황실이 설치되어 전쟁이 종료된 직후(3월 6일)까지 24시간 상시 운영되었다. 나아가 한국군도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유엔군의 일환으로 5억 달러의 지원금을 분담하고, 군 의료진 200명과, 수송기 5대를 파견하여 국제협력에 적극 동참하였다.
1. 사태수습을 위한 행정조정실의 부처별 업무지시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지시에 의거 행정조정실에는 걸프사태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부처별 주요 추진사항을 마련, 보고토록 하고 추진상황을 점검, 독려하였다.
외무부에 대해서는 현지교민의 안전과 대피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고 교민들의 철수를 위한특별기 파견 및 국내생활기반이 전혀 없는 귀국 교민에 대한 집단수용시설계획 마련, 연안국 공관과의 긴밀한 비상연락망 구축, 한미경제협의회 등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를 기하도록 하였다.
경제기획원에 대해서는 생필품 등의 물가관리에 우선적으로 총력을 기울이고, 유가 및 에너지가격조정과 미국의 방위비 분담요구와 관련한 추가경정예산의 편성에 대비하고, 전반적인 경제운용계획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동력자원부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최대 석유공급지역인 페르시아만의 전쟁으로 석유수급에 큰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민간정유회사와 석유개발공사간에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특별석유수급대책을 마련하고, 석유 수입원의 전환가능성을 모색하고, 민생유류 일일점검을 위해 등유단속반을 가동하도록 하였다.
내무부는 대테러활동 및 차량 10부제의 전면적 실시와 사회 전반적인 불안 심리를 안정시키고, 치안 및 질서유지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였다.
국방부는 걸프전 현지조사단 파견과 유엔평화유지군의 일환으로 군의료진 200명을 파병하고, 군의료지원단의 활동내용을 면밀하게 점검하도록 하였다.
이밖에 법무부는 공항 및 출입국관리시설에 대한 테러 대비, 건교부는 사우디 근로자의 안전 철수 문제, 문공부는 언론오보에 대한 시정조치 등의 활동을 지시하였으며, 체육부는 테니스장 야간조명 금지 등 각 부처별로 총력 대응태세 확립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였다.
2. 종합상황실 운영
걸프전 발발(1991.1.17) 다음날인 1991년 1월 19일,행정조정실 제1행정조정관을 실장으로 하는 걸프사태 종합상황실이 설치되었다. 걸프사태 종합상황실은 24시간 상시 운영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각 부처의 업무를 점검·조정하고, 청와대 비서실, 감사원과 함께 공직자 비상근무태세를 점검하였으며, 행정조정실장 주재로 정부부처 감사관 회의와 기획관리실장 회의를 개최하고, 행정조정실장이 직접 일선기관을 방문하여 근무상태를 점검하는 등 걸프사태로 인한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국무조정실,《국무조정실 30년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