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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과학기술정책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원자력법」(1958)
「과학기술진흥법」(1967)
「기술개발촉진법」(1972)
「특정연구기관육성법」(1973)
「기초과학연구진흥법」(과학기술부, 1989)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특별법」(과학기술부, 1997)
〈과학기술장기계획〉(1986)

배경

과학기술 정책의 시작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59년에 원자력연구소가 설립되면서였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 경제개발 계획과 함께 정부에서는 과학기술 업무를 전담할 기구가 설립되었다. 이미 1961년 7월 경제기획원 내에는 과학기술 진흥 업무를 전담하기 위한 기술관리국이 설치되었으며, 1964년 2월에는 과학기술 정책의 심의와 건의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과학심의회〉가 대통령직속기관으로 설치되었었다. 이들 부서들을 근간으로 해서 1967년 4월 각 부처에 분산되어 있던 행정기구와 연구기관을 승격·통합하여 과학기술처가 탄생하게 되었다. 1967년 공포된 「과학기술진흥법」은 우리나라에서 체계적인 과학기술 정책이 추진되는 이정표가 되었다. 원자력연구소 설립 이후 우리나라 과학정책에서 커다란 획을 그은 연구소는 1966년에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였다. KIST는 설립된 지 3년 뒤에 연구소 건물이 준공되었고, 이에 따라 외국에서 산업적 연구를 하는 유능한 과학기술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등 본격적인 연구 활동을 하게 된다.

내용

1. 1970년대 과학기술 정책
1970년대 과학기술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분야의 정부출연연구소가 설립되었으며, 우리나라 연구학원 단지의 중심이 대덕 단지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1971년 “산업발전을 위해서 필요로 하는 과학기술분야에 관한 심오한 이론과 실제적인 응용력을 갖춘 자를 양성하는 것”을 설립 목적으로 전문적인 과학 교육기관인 과학원이 서울 홍릉에서 설립되었다. 1972-3년 사이에 「기술개발촉진법」(1972), 「기술용역특별법」(1973), 「특정연구기관육성법」(1973) 등 과학기술 관련 주요 법률이 제정되어 과학기술 진흥의 기초를 다졌다.


정부는 1973년에 대덕 연구학원 단지의 건설 계획이 확정되었고, 1976년을 전후해서 기존의 국책 종합과학연구소였던 KIST의 여러 기능들이 분화·독립되어 8개의 각 분야별로 전문연구소가 설립되었다. 1975년에는 중화학 공업의 발전에 바탕이 되는 계량·측정 기술을 국제적 수준으로 향상시켜서 공산품의 국제적 신용도를 높이고 정밀 계측 표준과 기술을 보편화할 것을 목표로 하는 한국표준연구소가 설립되었으며, 1976년에는 산업계에 화학 및 화학 기술에 관한 시험·연구·조사·지원을 하고 그 성과를 보급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화학연구소가 설립되었다. 같은 해인 1976년 한국의 전자 통신 산업을 지원할 전자기술연구소(KIET), 통신기술연구소(KTRI), 그리고 한국전기기기시험연구소가 설립되었다.



2. 1980년대 과학기술정책
정부출연연구소는 1980년 11월에 연구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각 부처에서 관리하던 기존의 16개 연구소를 유사기관끼리 통폐합해서 8개의 연구소로 축소하고 이를 과학기술처에서 관리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연구개발체계 정비와 운영개선 방안’을 공표되면서 정권 교체가 마다 통폐합을 거듭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1980년대에는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추진되는 기간이었다. 1983년 본격적인 국가연구개발 정책의 추진을 알리는 특정연구개발사업이 시작되었고, 1986년에는 과학기술중장기계획이 수립되었다. 또한 1989년에는 「기초과학연구진흥법」이 마련되어 기초과학 분야의 체계적인 정책 추진이 가능하게 되었다. 한국과학재단에서는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을 이끌어 갈 전국 이공계 대학 내의 우수 연구 센터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3. 1990년대 과학기술정책
1990년도에 들어와서 우리나라 과학기술 선진화를 위한 중요한 정부 정책들이 속속 추진되었다. 1992년에는 ‘선도기술개발사업(G7 Project)’이 과학기술부·산업자원부·정보통신부 등 과학기술관련 7개 부처의 참여 아래 범부처적인 국가연구개발사업으로 출범하였다. 1998년 전후로 IMF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특별법」의 제정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특정연구개발사업이 수립·실시하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창의적연구진흥사업(1997), 중점국가연구개발사업(1998), 민군겸용기술사업(1999), 국가지정연구실사업(1999), 21세기프런티어연구개발사업(1999) 등이 있다.

참고자료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한국과학기술30년사》, 1980
과학기술처,《과학기술연감》, 1980∼2000

집필자
임경순(포항공과대학교 인문사회학부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22. 05. 19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