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물의 안전한 보존ㆍ관리를 지원하는 제도로 기록물의 소유권은 소장 개인 및 단체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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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오 '제헌헌법 초고' 1점
('08. 4., 고려대학교 박물관)
유진오가 1947년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 안에 설치된 ‘조선법전편찬위원회 헌법기초분과위원회'의 초안 작성 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생산한 기록물로서, 초안은 세계 각국의 헌법전과 여러 학자들의 저서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으며, 1948년 5월에 법전편찬위원회에 제출되었다. 이 기록물은 유진오가 직접 작성한 육필 원고로서 200자 원고지 10장 분량으로, 군데군데 삭제하고 수정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국한문 혼용으로 쓰인 이 기록물은 헌법전문을 비롯해 총강, 인민의 기본적 권리와 의무, 국회, 정부, 보칙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기록물은 그 골격이 상당부분 제헌헌법에 반영되었으며, 조선→대한민국, 인민→국민 등으로 일부 용어는 교체되었다. 헌법초고는 제헌헌법의 기초가 되었던 자료로서, 역사적․상징적 의의를 지니는 기록물로서 가치가 있다.안재홍, '미군정 민정장관 문서 90건
('08. 4., 고려대학교 박물관)
안재홍이 미 군정시기 민정장관 재직 전후(1946년~1949년) 미 군정청 등과 관련한 공문․서한 등의 문서이다. 그 중 주목할 만한 기록물은 ‘1948년 2월 2일 유엔한국임시위원단 하부위원회의 13번째 미팅의 회의록’이며 이는 당시 회의 의장 잭슨과의 회담 내용을 기록한 원본자료로서 희귀한 것이다. 미군정시기 기록물은 대부분 미국 국립기록청(NARA)에 보관중이며 국내에는 원본 기록을 찾아보기 힘든 실정에서, 원본 기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특이할 만한 점이다. 이 기록물들은 대한민국 수립이전의 긴박한 정치상황과 대한민국 건국과정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며, 당시의 정치적 혼란과 6․25전쟁의 폐해로 수많은 근현대사 자료들이 멸실된 점을 고려하면 중요한 역사학적 기록물로서 가치가 있다.이승만 대통령 기록물 15만쪽
('08.10., 연세대학교 이승만 연구원)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을 역임한 이승만 前 대통령이 1899년부터 1949년까지 집필하거나 수집한 기록물이다. 그와 관련된 기록물은 크게 국문 · 국한문 · 한문으로 쓰여진 ‘동문(東文)’과 영문․불문으로 쓰여진 ‘서문(西文)’으로 구분된다. 기록물의 주된 내용은 이승만이 창작하거나 번역한 책의 미발간 원고 및 간행물, 3.1운동 관련 각종 선언서 · 선포문 · 전단 · 신문 · 잡지 등의 문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관련문서, 구미위원부 관련문서, 미주 교민단체 관련문서, 독립촉성중앙협의회 및 민족통일총본부 문서, K.D.R.K.문서, 정치자금 관계문서 등이다. 이 기록물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언론인 · 독립운동가 · 정치가 · 외교가 · 행정가 등으로 활동하면서 사적(私的)․공적(公的)으로 생산 또는 수집한 것으로서, 친필로 쓰여진 문서와 희귀한 문서들이 다량으로 포함되어 있어 대통령 기록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사 연구․정치사 연구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이승만대통령 사진기록물 19,000매
('13. 4., 연세대학교 이승만 연구원)
해방 이전 이승만의 독립운동 및 하와이 체류기간 관련 사진, 대통령 취임 이후의 통치활동 관련 사진, 한국전쟁 및 각 분야 전후 복구 관련 사진 등 총 19,000여 매로, 이화장(梨花莊)의 이인수 박사가 소장하고 있다가 연세대학교에 기증한 기록물이다. 이승만의 독립운동 및 통치활동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다량의 사진기록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으며, 하와이․미 본토․상해 거류 한인들의 생활상, 제1공화국 시기의 각종 시설 현황 및 당시 사회상을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국가지정기록물 3호로 기 지정된 이승만대통령 문서기록(15만 쪽)과 함께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관련 기록으로 일제하 한민족의 독립운동, 광복 후 대한민국 건국과정 및 제1공화국 시기의 한국 정치사를 연구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록물이다.‘조선말 큰사전’ 편찬원고 17권
('08. 10., 한글학회 12권, 독립기녕관 5권)
이 원고는 조선어학회에서 조선말사전 편찬을 위해 1929년~1942년 까지 12년 동안 준비한 것으로서, 현재 한글학회에 남겨진 것은 12권이다. <조선말 큰사전>은 1947년 10월 9일, 한글학회에 의해 첫째 권이 출판된 이래로 1957년에 완간되었다. 이 원고는 조선어학회사건(1942년 10월 1일)이 일어나면서 출판되지 못했고, 사전 출판이 재개된 것은 해방 이후 잃어버렸던 원고를 되찾으면서부터였다. 이 원고는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되었다가, 1945년 9월 8일에 지금의 서울역인 경성역의 한 창고에서 발견되어 되찾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립국가의 공용어를 확립해야 할 필요가 절실했던 시기였으므로, 우선 국가 공식어가 될 표준어의 기준을 정하고, 이 기준에 따라 사전의 표제어를 모으고 철자법을 확정해야 했다. 이렇게 결정된 공적 언어의 범위와 형태는 <조선말 큰사전>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는 최초로 공적 언어의 범위와 형태를 확정지은 사전의 원고라는 점에서 일차적인 가치가 있다. 이 기록물은 원고지에 연필과 펜(볼펜 또는 만년필)으로 쓰여 있으며,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곳곳에 첨삭한 흔적이 많고, 크고 작은 종이를 덧붙여 내용을 부가 설명하기도 하였다. 이 사실을 통해 1957년 완간된 최초의 우리말 대사전(<조선말 큰사전>)이 초고(草稿)의 완성 이후 어떤 수정․보완 과정을 거치면서 출판에 이르렀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조선말 큰사전>의 원고가 일제 강점기에 완성되었지만, 해방 이후 12년에 걸쳐 이 원고를 수정․보완하면서 사전이 완간되었고, 언어 규범 및 사전 체제의 변화․표제어의 삭제나 추가와 같은 변화 · 뜻풀이의 추가 집필이나 수정 등과 같은 수정․보완 사항이 이 기록물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가치가 있다. <조선말 큰사전>은 순수 민간단체가 편찬을 시도한 사전이라는 사실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의를 지니며, 최초의 우리말 대사전인<조선말 큰사전>의 12년간의 편찬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국어학적 의의가 큰 기록물로서 사료적 가치가 있다.도산 안창호 관련 미주 국민회 기록물 17,000건
('11. 12., 도산기념관)
미국 로스앤젤레스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복원사업을 추진하면서, 전 신한민보 발행인 겸 편집국장인 김운하가 소장해 온 공립협회, 대한인 국민회, 신한민보사, 임시정부 및 기타자료 총 17,000여 점을 도산안창호 기념관에 기증한 기록물이다. 안창호선생이 주도한 ‘국민회’와 관련된 자료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 외 공립협회, 신한민보, 대한민국임시정부 등에서 생산되거나 발간된 자료이다. ‘국민회’ 관련자료를 크게 분류하면, 중앙총회, 북미지방총회, 하와이․시베리아․만주리아지방총회, 멕시코․쿠바지역의 지방회 등에서 생산한 자료들이다. 기록물들은 당대에 생산된 유일본의 원자료들이며, 독립운동과 이주 한인들의 이민역사를 올바로 정립해 줄 수 있는 가치 있는 기록물이다.새마을운동 관련 기록물 3,015권
('11. 12., 새마을운동중앙회)
새마을운동중앙회,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소장 기록물로 새마을운동의 추진과정에서 생산된 다양한 기록물이다. 연수생 생활기록부, 분임토의결과보고, 분임토의차트, 새마을교육교재, 성공사례, 마을단위의 각종 기록물 등 여러 방면에 걸쳐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기록물의 형식면에서도 문서 뿐 아니라 슬라이드, 강의 녹음 테입, 영화 등 시청각 자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서 새마을운동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록물들이다. 새마을운동 기록물은 개발도상국의 빈곤퇴치와 근대화를 위한 참고자료이자 국제사회의 귀중한 자산이며 농촌근대화의 성공경험을 증명하는 가치있는 기록물이다.청강 김영훈(晴崗 金永勳) 진료기록물 955권
('13. 4., 경희대학교 한의학역사박물관)
1914~1974년까지 한국전쟁기간을 제외하고 약 60년 동안 서울 종로에서 보춘의원을 운영하면서 기록한 진료기록부, 처방전, 필사본 의학서 등 관련 기록물 955권으로, 청강 김영훈의 아들인 김기수 전 포르투갈 대사가 경희대학교에 기증한 기록물이다. 청강 김영훈은 1904년에 설립된 최초의 근대적 한의과대학인 동제의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전국의생대회와 전국 규모의 한의사단체를 결성하는 등 일제강점기 한의학 부흥에 앞장섰던 한의사로, 자신이 쓴 처방전을 모으고 그것을 토대로 매일 진료부를 작성하여 60년간 개업의 임상 실적들을 빠짐없이 보존하여 왔다. 청강 김영훈 진료기록물은 근대 의료체계 형성기에 전통의학 및 국민보건의료 실태를 알아볼 수 있는 기록물로서 의학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또한 내원한 환자의 주소와 연령, 직업과 질병명, 처방내용, 약재가격 등이 기록되어 있는 한 명의의 평생 진료기록으로 당대 생활사 연구의 실증적 자료로도 가치가 높은 기록물이다.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 3,060점
('13. 12., 사회복지법인 나눔의 집)
1992년 설립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대표적인 단체 중 하나인 사회복지법인 나눔의 집에 소장된 기록물로 위안부 피해자 구술기록, 기자회견·심리검사 영상, 그림과 사진, 유품 등 총 3,060점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소장기관인 나눔의 집과 인연을 맺은 분들의 기록물이자 나눔의 집이 진실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복지증진을 위해 노력해 온 과정을 담고 있는 기록물이다. 이 기록물은 일제강점기 민족 피해의 실태를 보여주는 기록물로 역사적 가치가 높고, 사회적 영향 및 현재적 의미도 매우 크다. 또한 현재까지 알려진 기록물이 대부분 일본군 위안부 가해자 입장의 기록물인데 반해, 이 기록물은 피해 당사자들의 기록이며 육성 구술기록, 그림, 사진 등 다양한 유형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더욱 높다.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 940점
('14. 12.,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1990년대 우리나라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제기된 이래 대구·경북 지역에서 피해자 지원활동을 위해 1997년에 설립된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일본 정부에 진상규명, 공식사죄, 법적배상 등을 촉구하는 활동과 피해자들의 심리치료 등 다양한 복지지원활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산·접수한 기록물 총 940점이다. 세부 유형으로는 증언기록집, 간병일지, 활동보고서 등의 문서류 70점, 할머니 피해증언, 행사·기자회견 등의 녹음·영상기록 208점, 할머니 유품, 원예치료 결과물인 압화작품 등의 박물류 662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기록물은 국가지정기록물 제8호로 지정된 ‘사회복지법인 나눔의 집’ 소장 기록물과도 같은 맥락을 가지는 내용으로, 대구·경북 지역 위안부 피해자들의 활동을 이해할 수 있으며, 특히 대구에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무료 의료지원을 실시하였던 곽병원의 진료차트 등은 피해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 기록군이다.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 125점
('14.12., 사회복지법인 나눔의 집)
2005년부터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미술치료를 시작하면서 생산된 기록물 총 125점으로, 위안부 피해자 미술치료 작품 100점과 미술치료를 받는 장면이 담긴 사진기록물 25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어린 나이에 정신적·육체적 충격을 겪어야 했고, 고통스런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미술치료를 통해 당시 겪었던 상황들을 그려나가며 본인들의 심리와 기억을 표현하였다. 거칠고 미숙한 솜씨의 작품들이 대다수이지만, 치료사의 손길이 거의 배제된 채 위안부 피해자 자신의 솜씨로만 그려진 것으로 당시의 상황과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으며, 피해자들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이해하고 치유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이다.상주 동학교당 기록물 1,425점
('13. 12., 상주 동학교당 김정선)
1890년부터 1950년 전후까지 상주 동학교 설립과 포교활동과 관련해 생산된 기록물 일체로 전적(典籍), 판목(板木), 복식(服飾), 교기(敎旗), 의기(儀器)등 모두 289종 1,425점이며, 상주 동학교당(경상북도 상주시)에 소장되어 있다. 상주 동학교는 영남과 강원지역을 세력권으로 하였던 남접 계열의 동학교로서 1922년 조선총독부의 공인을 얻은 이후 1930년대까지 대대적인 간행사업을 벌였다. 상주 동학교당에는 그 당시의 동학경서와 동학가사 뿐 아니라 인쇄에 사용했던 책판 등 인쇄용구 및 관련 물품이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부교주 김낙세가 1890년부터 1943년까지 쓴 동학일기 등 동학교의 변천사, 일제강점기 종교탄압의 실상과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이 포함되어 있다. 이 기록물은 동학으로 대표되는 근대 한국 종교문화 뿐 아니라 국문학, 민속학 등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근대 인쇄술 및 인쇄문화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기록물이다.심소 김천흥(心韶 金千興) 전통예술 관련 기록물 2,400점
('13. 12., 심소김천흥 무악예술보존회)
‘조선의 마지막 무동(舞童)’으로 불렸던 전통예술가 심소 김천흥(1909∼2007)의 기록물로 김천흥의 유족에 의해 (사)한국춤문화자료원에 기증되었다가 2015년 10월 심소김천흥무악예술보존회로 관리주체가 변경되었다. 김천흥은 조선왕조 궁중예술의 맥을 이어 종묘제례악, 처용무, 궁중정재의 보존과 전승에 빼어난 활약을 보이며 전통무용과 국악계를 이끌었으며, ‘처용랑(1959)’, ‘만파식적(1969)’을 안무하여 한국 창작춤의 기초를 세웠던 인물이다. 김천흥 기록물은 김천흥의 생애와 예술 활동을 두루 아우르는 것으로,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공연현장에서 직접 제작·활용되었던 대본, 프로그램, 사진, 의상과 소품 등 2,400점의 다양한 기록물을 포함하고 있다. 그중 1959년 처용랑 초연 공연관련기록, 육필로 작성한 궁중정재 무보 등은 전통예술 분야에서 특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는 예술가 한 사람의 기록 차원을 넘어서 근현대 한국 예술의 역사를 담고 있는 사료로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높으며, 전통예술의 전승과 복원은 물론 새로운 예술의 창작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이다.대한천일은행 창립 및 회계 관련 기록물 75점
('14. 6.,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
1899년 대한제국 황실의 자금 지원 아래 상인들 주도로 설립한 우리나라 초창기의 대표적 은행인 대한천일은행 관련 기록물로 창립 청원서 및 인가서, 정관, 지점설치 관련 문서 등 대한천일은행 창립 및 운영 관련 기록물(12건 18점)과 정일기, 장책, 회계책, 출납기부 등 회계 관련 기록물(7건 57점)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19건 75점이다. 대한천일은행은 대한제국기 상업입국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설립된 은행으로 창립 관련 문서는 근대 은행의 설립과정 뿐만 아니라 금융, 재정, 기업 경영 등을 비롯한 대한제국 경제정책과 운용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개성상인의 송도사개치부법(松都四介置簿法:고려시대 주로 개성상인들이 사용했던 우리나라 고유의 회계처리법)과 동일한 방식으로 기록된 회계문서는 전통 복식부기 방식을 확인할 수 있고, 송도사개치부법에서 현대 회계방식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장부인 정일기를 비롯하여 같은 회기의 보조장부가 함께 남아 있어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송도사개부기 문서 중 가장 완전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 근대 은행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 기록물은 한국 금융사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특히 회계 관련 자료는 한국에서 고안된 특수한 복식부기법인 송도사개치부법 방식으로 작성되어 회계사 및 구한말 사회경제사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록물이다.3.1운동 관련 독립선언서류 48점
('15. 12.,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소장 ‘3.1운동 관련 독립선언서류’ 48점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기록물이다. 이중 1919년 2월 8일 일본 동경에 있는 조선유학생들이 발표한 2.8 독립선언서는 조선의 독립을 주장한 선언서로 3.1운동 발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기록물로 평가받고 있다. 같은 해 3월 1일 서울에서 최남선이 기초하여 발표한 신문관판과 보성사판의 3.1 독립선언서는 민족자존의 정당한 권리와 인류 평등의 대의를 천명하고 있으며, 평화적인 시위운동을 벌일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통영, 하동 등 전국의 각지에서도 독립선언서가 간행되었으며, 만주와 하와이 등 해외에서도 민족의 독립을 선언한 정황을 살펴볼 수 있다. 이 기록물들은 민족대표의 독립선언과 함께 각계각층,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3.1운동의 참여양상과 전국각지 및 해외동포로의 독립운동 전파·확산 과정을 보여주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자료들이다. 특히 다양한 종류의 독립선언서류가 독립기념관 내에서 총체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고려인 문화예술 기록물 23권
('20. 1., 김병학)
‘고려인 문화예술 기록물‘은 고려인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고려인 1‧2세대 한글문학작가 김기철, 김해운, 한진의 육필원고 19권과 고려인 구전가요가 수록된 창가집 원고 2권, 고려극장의 활동을 알 수 있는 앨범 2권 등 총 23권의 기록물이다. 고려인 문화예술 기록물은 구소련 사회에서 숱하게 민족수난을 겪으면서도 민족 정체성을 지키려는 민족의식이 담겨있으며, 고려인들의 생활상 및 공연 실제 모습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희곡문학사와 연극사면에서도 희소가치 및 정보적 가치가 있다. 또한 고려인의 역사와 활동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기록들로써 고려인 문학의 양상을 살펴 볼 수 있다.단원고 4.16기억교실 관련 기록물류 11철(室)
('21. 12., 4.16민주시민교육원, 4.16기억저장소)
‘단원고 4.16기억교실 관련 기록물류’는 2014년 4월 16일로 시간이 멈춰진 단원고등학교 2학년 1반∼10반의 교실과 교무실로 칠판·게시판·교실 천장·교실 비품·교실 고정·교실 복도 등의 기록물로 구분하여 정리되어 있는 총 11개의 철(室)이다. 이 기록물들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교실의 모든 것들을 문화재 건축 전문 시공사 참여로 철거하여 4.16민주시민교육원 기억관에 원형복원 공사로 완공한, 희생자들의 학교 공간을 그대로 재현한 기억공간이자 단원고 희생자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고 기억할 수 있는 집합적 추모공간이다.4.16기억교실 관련 희생자·생존자·단원고·세월호 기록물 113철
(‘23. 1., 4.16기억저장소)
‘4.16기억교실 관련 희생자·생존자·단원고·세월호 기록물’은 4.16기억저장소가 4.16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로부터 기증받은 기록물과 유품 등 113철(410건)로,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학교기록, 생활기록, 추모기록, 교실 현장기록과 유품, 그리고 세월호에서 인양된 선박도면, 바다 밑 뻘에 묻혀있던 기록물, 불에 일부가 탄 종이기록 등 다양한 기록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기록물은 단원고 4.16기억교실 기록물(국가지정기록물 제14호)과 연관성이 깊고, 재난을 둘러싼 유족 등 사회적 대처방식과 추모방식, 추모문화 등을 반영하고 있으며, 학생들이 직접 생산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학생생활사, 학교문화사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특히, 세월호에서 인양된 선체 도면과 탑승 시 학생들에게 배포된 기록물은 희소성과 함께 증거적 가치를 지닌다.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옥중서신 및 사진첩 3,100점
(‘23. 1.,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옥중서신 및 사진첩‘은 1976∼1993년 문익환 목사가 옥중에서 아내인 박용길 장로와 주고받은 서신 3,049점과 1910∼1990년대 독립운동, 민주화운동, 통일운동 등 한국 근현대 100년을 아우르는 사진첩 51권이다. 이 기록물은 대한민국의 정치·사회를 이해하고 한국 근현대 100년을 성찰하고 기념하는 기록물로, 독립운동·민주화운동·통일운동 기록이자 한국 현대사의 가족사·종교사·생활사 기록이다. 대한민국 격동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정치, 사회적 내용 뿐만 아니라 생활사를 담은 사진과 서신으로 기록물의 유일성, 희소성과 함께 풍부한 정보적 가치를 담고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사진은 간도지역 독립운동사의 재구성에도 희귀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