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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병무

전후방대비태세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전후방대비태세의 강화는 제5공화국 국방정책의 중점 방향 중의 하나로 자주국방태세의 확립을 위한 전후방 방위태세를 강조한 것이었음.

배경

1980년대에 우주개발문제를 계기로 미․소의 대결이 새로운 차원에서 야기되었고, 레바논사태나 이란-이라크전쟁 등과 같은 국지전이 세계 전역에서 일어났다. 북한의 대발도발 역시 종전과 마찬가지로 변화가 없었다. 이러한 안보환경에서 1981년 10월 출범한 제5공화국은 내부적으로 정치적인 혼란과 사회적 소요를 안정시키면서 국정의 기본방향을 전쟁억제를 위한 자주국방태세의 확립을 위한 국가안보의 강화, 민주주의의 토착화, 사회복지의 건설, 정의사회의 구현, 교육혁신과 문화창달을 내걸었다. 특히, 국방정책의 중점은 자주국방태세의 확립, 방위태세와 예비전력의 강화, 정신전력의 배양, 국방관리의 정착화에 있었고, 아울러 적의 어떠한 무력도발도 이를 초전에 막을 수 있는 전후방 방위태세의 견지에 있었다.

내용

가. 전후방 방위태세의 확립
제5공화국의 국방정책하에서 강조된 전후방 방위태세의 확립은 결국 이를 위한 새로운 전술전기의 개발과 연마, 나아가 한․미 연합훈련과 3군 합동훈련 등 실전적인 교육훈련의 강화 및 고도의 전투역량 배양 등이 중점을 이루었다. 그리고 종래 추진해온 전력증강계획을 효율화하고 방위산업의 육성 차원에서 고도정밀병기의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양산체제를 구축해나가는 한편, 군 정신전력을 강화하여 장병들의 초전필승의 신념과 불퇴전의 정신자세를 유지하고 나아가 예비전력을 정비․강화함으로써 민방위체제의 실제적인 기능을 극대화하는 비정규전태세의 확립에 박차를 가했다.

나. 장기적인 군사전략개념의 형성
그 결과, 군의 장기적인 군사전략개념의 도출과 수세 일변도의 전략 틀에서 탈피하여 공세적인 전략개념과 전략적 인식이 생겨났다. 즉, 평시의 전쟁억제 태세를 전시작전 태세로 전환하여 전략종심이 짧은 지리적 여건을 고려하여 공세적 방위개념에 의해 수도권의 안전을 절대 보호하며, 적시에 즉각적인 반격으로 공세이전하여 전세를 회복하고 전국을 마무리한다는 전략적 개념이 형성된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적 특성에 맞는 독자적인 전략발전계획과 군사교리, 나아가 전투태세의 완비를 위한 대비책으로 이른바 개전초 3일을 결정적 시기로 판단하고 이에 대비하여 초전대응태세를 강화하는 작전계획의 수립과 무기체계의 구축에 진력했다. 전투준비시간을 단축하고 야간전투의 대비태세를 완벽하게 구축했는가 하면,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내다보면서 폭발물 테러 공격에 대비하는 비정규전 작전태세를 더욱 보강했던 것이다.

다. 지휘체계의 조정
또한, 1980년대 전반기 내에 제3군사령부가 연합군사령관의 작전통제하에 수도군단과 제1군단을 지휘하고, 동해안지역에서는 제8군단을 창설하여 작전상의 취약성을 개선하도록 지휘체계의 조정이 단행되었으며, 동해안경비사령부를 기간으로 제7군단을 창설하여 기동군단화를 실현시켰다.
그밖에 수도경비사령부를 수도방위사령부로 증편하여 전․평시 수도권 방어체계를 일원화하고 대비정규전 작전태세의 강화를 위한 3․25계획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대간첩대책회의와 안보대책보고회 등을 확대하고 민․관․군․경의 협조체제를 강화하여 총체적인 안보역량을 통한 전후방 방위태세를 구축해나갔던 것이다.

참고자료

국방군사연구소,《국방정책변천사》, 군인공제회, 1995.

국방군사연구소,《건군50년사》, 서울인쇄공업협동조합, 1996.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국방사》4, 군인공제회, 2002.

집필자
백기인(원광대 군사학부 외래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14. 0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