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 19일의 〈4차 6자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기본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마련되지 못하였다. 11월 9일부터 3일간 베이징에서 개최된 〈5차 6자회담〉도 실제 해결 방안에 대한 북·미간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성과 없이 휴회되었다. 2005년 9월부터 시작된, 북한의 마카오 계좌에 대한 제제는 2006년에도 계속 되고 있었다. 7월 5일 북한은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스커드, 노동, 대포동 2호 미사일을 시험 발사 하였는데, 이는 미국을 더욱 강경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7월 24일 중국도 북한의 중국은행(Bank of China) 계좌를 동결하였다. 북한은 이러한 경색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2006년 10월 핵실험을 전격 감행하였다.
주변국들의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핵실험을 실시하였다. 북한의 핵실험은 주변국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혼란을 야기하였다. 미국과 프랑스는 북한 핵실험의 진위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였고, 그 위치와 규모 역시 주변국들의 자료 차이로 인해 판가름하기 쉽지 않았으나, 결국 10월 17일 미국은 핵실험을 한 장소로 추정되는 한 풍계리 인근의 공기 샘플을 채취하여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했음을 공식 확인하였고, 그 규모는 일반적인 핵실험 규모에 훨씬 못미치는 1킬로톤 정도로 추정되었다. 미국은 북한의 핵 실험 이전의 경고와 달리 즉각적이고 강력한 제제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지만, 경제제제와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의 강화에 노력하였다. 주변국들이 우려하였던 북한의 2차 핵실험은 2006년 11월 현재 일어나지 않았다.
정성장,〈북한 핵실험 : 북한의 의도와 입장〉《정세와 정책》, 2006년 특집호 (통권 12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