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부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남북관계와 남북대화의 틀을 변화시켜 상호적대와 대립이 아닌 상호인정과 공존의 구도를 만들어 나갔다.〈제5차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채택된 〈남북한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는 노태우 정부가 추진해온 남북한간의 화해와 협력·상호불가침에 대한 원칙과 실행방안을 포괄한 남북한 관계의 기본합의서에 해당한다.
1992년 2월 19일〈제6차 남북고위급 회담〉 중에 발효된 〈남북한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는 그 전문에서 남북한간의 관계를 일반적인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정의했다.
제4장 수정 및 발효에서는 쌍방이 합의하여 수정할 수 있고 남과 북이 각기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문본을 교환한 날부터 효력이 발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여러 측면에서 남북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합의서’의 채택으로 남북한은 상호불신의 관계에서 벗어나 통일을 지향하는 새로운 시대를 공동으로 열 수 있게 되었다. 남북한의 유엔가입이 상호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었다면 ‘합의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남북이 둘이아니라 하나임을 선언한 것이다.
넷째, ‘합의서’는 공개적이고 실천적인 실효성을 보장하고 있다. 1972년〈7·4 남북공동성명〉이 통치자간에 밀사를 교환하여 끌어낸 것이라면 ‘합의서’는 범정부적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여론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아울러 양측은 합의서 발효 후 1개월 이내에 정치·군사·교류·협력 분과 위원회를 설치하고, 3개월 안에 남북연락사무소, 남북군사공동위원회, 남북경제교류협력위원회 등 3개 실천기구를 개설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1992년 2월 19에 발효한〈남북기본합의서〉는 현재까지 남북 정부가 합의한 합의서 중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포괄적이며 실천적인 합의서이다. 이러한 위상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은 이 합의서가 규정한 평화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하는데 성공적이지 못했다. 북한 핵위기가 극복되고 남북한 관계가 평화를 구조화시키고 통일을 성숙시키게 될 때 이 ‘합의서‘는 남북한 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위한 전범(典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보처,《제6공화국실록 ②》공보처, 1992
공보처,《자료 제6공화국》공보처,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