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부는 1970년대 및 1980년대의 남북대화의 틀을 넘어 1988년 8·15 남북정상회담제의 등 남북한 고위 당국자간의 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는 남북한간의 대화가 적십자 회담, 체육회담 등 인도적·비정치적 수준의 대화의 수준을 넘어 남북한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정치·군사부문에 대한 책임있는 당국자간의 대화와 교섭을 통하여 남북한간의 분단의 장벽을 실효적으로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남북한 고위당국자간 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노태우 정부의 노력은〈7·7 특별선언〉 이후 동유럽 국가들과의 수교 진척, 그리고 한소정상회담의 개최 등 북방정책의 전개에 따른 국제적 환경의 조성과 함께 전개되었다.
〈남북 고위급회담〉은 1988년 12월 28일 우리측 강영훈 총리가 북한 정무원 총리 연형묵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제의한데 대하여 1989년 1월 16일 북한측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개시되었다. 1990년 9월〈제1차 남북고위급 회담〉은 1989년 2월 8일에 개최된 〈제1차 예비회담〉 이후 수차례의 예비회담을 거치는 가운데 본회담의 명칭·시기 및 장소·대표단 구성 등 회담의 구성과 절차에 대한 사항 이외의 한미간의 ‘팀스피리트’ 훈련중지, 휴전선의 ‘콘크리트벽’ 제거 등 북한의 돌출제안 등으로 공전되었다가 제7차 예비회담(1990.7.6)에서 절차문제를 타결하고 제8차 예비회담에서 남북고위급 본회담의 일정을 동년 9월 4일에서 7일간 서울 개최할 것을 확정하여 〈제1차 본회담〉이 실시되었다.
공보처,《제6공화국실록 ②》공보처, 1992
공보처,《자료 제6공화국》공보처, 1992